[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라산'과 '한나산'… 남북은 왜 달리 쓸까요?
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라산'과 '한나산'… 남북은 왜 달리 쓸까요?
평창동계올림픽은 선수들의 열전 못지않게 북한의 음악공연도 화제였다. 삼지연관현악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두 차례 공연을 통해 ‘노래련곡(연곡)’ ‘락엽(낙엽)’ 등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다. 비록 공연의 정치적 의미와 논란에 가려 부각되진 않았지만 거기엔 간과해선 안 될 게 하나 있었다. 달라진 남북한 말과 글의 일부가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회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가곡으로 알려진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은 주목할 만하다. 애초 이 노래를 몰랐던 사람일지라도 문맥으로 보아 ‘한나’가 ‘한라산’을 뜻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산은 본음, 한라산은 속음

우리가 아는 ‘한라산(漢拏山)’은 북에선 ‘한나산’이라고 한다. 한자 拏는 ‘붙잡을 나’자로, ‘나포(拿捕: 붙잡아 가둠)’ 할 때 쓰인 글자다. 拿는 拏의 속자(俗字: 획을 간단히 해 더 널리 쓰이는 글자)다. ‘한나산’이 변해 지금의 ‘한라산’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속음(俗音)이라고 한다. 속음이란 한자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을 말한다. ‘六月’이나 ‘十月’을 육월, 십월이라 하지 않고 유월, 시월로 읽고 적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한자어 발음이 변해 굳은 게 꽤 있다. 그중에서도 희로애락(喜怒哀樂, 희노애락 ×), 대로(大怒, 대노 ×) 같은 말은 표기를 자주 틀리니 주의해야 한다. 怒가 ‘성낼 노’이니 본래 발음과 표기는 ‘희노애락, 대노’다. 이게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 내기 편하게 자연스레 희로애락, 대로로 바뀌었다. 곤난(困難)→곤란, 논난(論難)→논란, 무녕왕릉(武寧王陵)→무령왕릉, 지이산(智異山)→지리산, 폐염(肺炎)→폐렴, 허낙(許諾)→허락 따위가 모두 같은 경로로 지금의 표기로 굳은 것이다. 듣기에 좋게, 또는 발음하기 쉽게 음이 변했다는 점에서 활음조 현상이라고도 한다.

표음주의-형태주의 차이로 달라져

한라산의 경우 북에서는 속음을 취하지 않고 원음으로 적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속음 현상을 인정한다. 가령 우리가 속음을 표준어로 하고 있는 ‘허락’이나 ‘희로애락’은 북에서도 같은 표기다. 하지만 곤란(困難)이나 의논(議論), 폐렴(肺炎) 같은 것은 ‘곤난, 의론, 페염’으로 적는다. ‘어려울 난(難)’과 ‘논할 론(論)’ ‘불꽃 염(炎)’이란 본음을 살렸다. 속음 표기를 인정하되 우리보다 그 범위가 사뭇 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자 음의 형태를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에서 두음법칙을 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참고로 북한 맞춤법에선 한자말에서 모음 ‘ㅖ’가 들어있는 음절은 ‘계, 례, 예, 혜’만 인정한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 ‘폐’는 ‘페’로 적기 때문에 ‘폐염, 폐결핵, 폐쇄적, 폐회식’ 따위의 말은 모두 ‘페염, 페결핵, 페쇄적, 페회식’이 된다.)

이 같은 남북한 간 표기 차이에는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비밀 하나가 담겨 있다. 표음주의와 형태주의 간 뿌리 깊은 대립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남북한 맞춤법도 근본적으로 큰 줄기가 달라졌다. 한글이 소리글자(표음문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말소리를 그대로 글자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뜻글자(표의문자)는 소리와 상관없이 하나하나의 글자가 일정한 뜻을 나타낸다. 글자 형태는 변하지 않고 늘 고정돼 있다. 한자가 대표적인 표의문자이다.

☞ 다음 호에 계속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