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의심스러워도 의심하는 '나'는 분명 존재한다"
정신과 물질은 별개라는 게 데카르트의 이원론이죠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8) 데카르트 (하) 이원론
지난 편에서 살펴본 대로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해 치열하게 의심했으며 이 과정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찾게 됐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이 명제를 찾은 것은 비유로 말하자면 의심이라는 망망대해로부터 자아를 건져냄으로써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건져 낸 자아는 의심이라는 바닷속의 외로운 섬과 같은 상황이다.

자아 확인 뒤 외부세계 진리 찾아

데카르트
데카르트
이제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 과정에서 자신이 의심의 바다에 밀어넣었던 다른 지식을 건져내야 하는 철학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 과제는 확실히 존재하는 자아를 대전제로 해서 그로부터 외부 세계의 다른 진리를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자신이 의심한 것들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데 있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방법적 회의 과정에서 상정한 악마라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그 악마는 절대적으로 자명한 수학의 진리마저도 속일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고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다

신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자아의 경험에 입각한 증명이다. 자아 안에 내재해 있는 완전하고 무한한 관념은 유한한 자아에서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신의 관념은 자아 밖에 존재하는 신에게서 온 것이다. 다음으로 신 관념 자체를 분석해 신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즉 신의 관념은 지고하고 완전한 존재를 의미한다. 신의 관념에는 어떤 결핍도 없어 신에게는 존재함의 특성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한 신의 본성과 모순되기 때문에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자아’의 존재에 이어 ‘신’의 존재를 입증한 데카르트는 이제 ‘세계’의 존재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에 따르면 신은 완전무결한 존재인 까닭에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성실성이라는 성격, 즉 속이지 않는다는 성질을 지닌다. 따라서 신은 속이지 않는 존재인 까닭에 그가 창조한 이 세계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방법적 회의로 철학의 기초를 다진 후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데카르트의 길에 마음과 몸의 관계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더라도 그것을 의심하는 ‘나’라는 존재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의심하는 ‘나’의 본질은 ‘의심하는’ 사고 활동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정신’이라 하고 정신이 파악한 대상을 ‘물질’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정신과 물질의 차이는 무엇일까.

데카르트에 의하면 정신은 사유, 즉 생각하는 것을 속성으로 하며, 물질은 연장성, 즉 공간을 차지하는 부피를 그 속성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정신은 결코 공간을 차지할 이유가 없으며, 물질은 결코 사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둘은 상호 무관하며, 상호 자립적인 존재다. 이처럼 세계를 정신과 물질로 나눠서 파악하는 사고 방식을 이원론이라고 한다.

이원론보다 일원론에 무게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8) 데카르트 (하) 이원론
그런데 문제는 정신과 물질이 이와 같이 상호작용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 ‘정신과 물질 둘 다로 이뤄진 인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을 하니 정신도 지니고 있고, 사람의 몸은 물질로 이뤄졌으니 물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물질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철학자들은 마음과 몸의 문제, 곧 심신 문제라고 부르고 있다. 이원론자들은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때 마음과 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다. 예컨대 마음이 피곤하면 몸도 피곤하고,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피곤하듯이 말이다.

데카르트는 이 대목에서 인간에게만 예외를 인정하고자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정신과 물질은 상호작용할 수 없지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대뇌 아래 ‘송과선’이라는 부위가 있어서, 그곳에서 정신과 물질이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신경과학의 발달로 정신의 많은 부분이 뇌의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뇌도 몸의 일부이므로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일원론이 힘을 받는 듯하다.

◆생각해봅시다

신의 관념은 지고하고 완전한 존 재를 의미한다. 신의 관념에는 어 떤 결핍도 없어서 신에게는 존재 함의 특성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는 것이다. 즉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완전한 신의 본성과 모 순되기 때문에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