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건강보험 확대 논란] 보험수가 낮아 병원은 "환자 받을수록 적자" 하소연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많은 선진국이 부러워한다. 전 국민이 가입돼 있고, 누구나 병원에 가면 즉시 진료받을 수 있으며, 일반적인 질병에는 환자의 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문재인 케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한층 확대하는 정책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모두 부담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를 대거 급여화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현행 63.4%에서 70.0%로 높인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이 반길 만한 정책인데도 의사들과 정책전문가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국 ‘재정 문제’와 관련이 있다.
 [Cover Story-건강보험 확대 논란] 보험수가 낮아 병원은 "환자 받을수록 적자" 하소연
“동네 의원·중소병원 파산할 수도”

의사들은 비급여가 대폭 축소되면 수입이 줄어 병원 경영이 위협받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또 보장성 확대로 건강보험 재정이 나빠진다면 가뜩이나 짜게 책정된 의료수가가 더 깎일 가능성이 크고 생존권까지 흔들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는 병원의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가 환자 대신 병원에 지급하는 의료수가가 진료 원가보다 낮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최대한 삭감해 지급하기 때문이다.

중증 외상 수술로 유명한 이국종 교수가 “환자를 받을수록 병원에 손해를 가져와 결국 나는 연간 10억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고 하소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물론 대표적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들의 집단 시위가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많다. 다만 국내 의료계의 수익구조가 왜곡됐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연세대가 지난해 의료수가 원가보전율을 조사한 결과 의원 62.2%, 병원 66.6%, 종합병원 75.2%, 상급 종합병원 84.2% 등으로 병원 규모에 관계없이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했다. 병원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MRI, 초음파, 영양주사 등 값비싼 비급여 진료로 메워왔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비급여를 전부 급여화하면 대부분의 중소병원과 동네 의원의 수익 구조가 열악해져 단기간 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文케어 시행하면 건강보험 적립금 9년 뒤 고갈”

당초 정부는 문재인 케어 재원으로 향후 5년 동안 30조6000억원을 예상하고, 보험료를 매년 평균 3.2% 인상하면 재정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재원 마련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내년 건보료 인상은 2.04%에 그쳤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금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더 큰 문제는 5년 후부터는 더욱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저출산·고령화를 감안하면 현 수준의 보장률만 유지해도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건강보험의 당기수지는 2019년부터 적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1조원가량 쌓여 있는 건강보험 적립금도 2026년에는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상됐다. 예산정책처 측은 “노인 인구 증가 등을 감안하면 보장성 강화 대책은 반드시 효과적인 의료비 관리 대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의료 쇼핑’을 막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격 장벽이 낮아지면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며 “대형 대학병원 환자 부담금을 높이는 등의 추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경증 환자는 동네의원으로, 중증 환자는 큰 병원으로 가는 의료전달 체계가 안착되면 과도한 의료 이용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장성 높이려면 국민에게 건보료 인상 설득해야”

선진국에서 배워갈 만큼 발전한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통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줄이고 병원에는 적정 수가를 보장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보험료 인상 없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차라리 “의료의 질을 높일 테니 보험료를 더 부담하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솔직하다는 것이다. 국내 의료계에 적용되는 겹겹이 규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NIE 포인트

해외 선진국의 의료보험 체계는 과연 어떻기에 한국을 부러워하는지 알아보자. 과도한 '의료쇼핑'을 막을 정책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