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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79호 2017년 12월 18일

뉴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순수한 기부에 세금폭탄 안돼" 과세기준 제시

장학재단이 기업 주식을 기부받으면 증여세를 내야 할까. 장학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은 출연받은 재산에 대해 증여세 납부 의무가 없다. 공익법인의 활동을 조세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이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하는 경우 증여세가 부과된다(‘5% 룰’). 출연자가 공익법인을 기업의 지배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만 5%를 초과하더라도 출연자와 내국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공익법인을 간접적인 지배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없는 때는 원칙으로 돌아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장학사업에 기부했다가 ‘증여세 폭탄’

출연자와 내국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출연자 및 그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내국법인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에는 출연받은 공익법인도 포함된다. 출연자와 출연받은 공익법인이 특수관계에 있는 경우 이들이 내국법인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최대주주 요건이 충족된다. 여기서 출연자와 공익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인정되는 기준이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해 대법원은 2017년 4월 선고한 판결에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H는 6촌 동생과 함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장학사업에 사용하도록 모교에 기증하고자 했다. 모교에서 주식을 직접 증여받는 것은 어렵다고 해서 2003년 K장학재단에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 5년이 지나 2008년 과세관청은 H가 주식 5%를 초과해 기부했다는 이유로 K장학재단에 증여세 140억원(가산세 포함)을 부과했다. 이에 K장학재단은 2009년 12월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진행 중 K장학재단이 증여세를 체납하자 과세관청은 연대납세 의무자인 H에게 가산금까지 더해 증여세 225억원을 부과했다.

1심과 2심은 엇갈린 판단을 했다. 1심은 주식 기부 전 H가 수원교차로 지배주주였으므로 증여세 과세 요건은 충족되지만, 경제력 세습 없이 순수하게 장학사업을 위한 것이라며 K장학재단의 청구를 인용했다. 반면 2심은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사유인 순수한 기부 의사만을 이유로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5% 룰’ 해석 방향 제시

대법원은 5년 넘게 치열한 심리를 거쳐 1, 2심과 다소 다르게 제도적 관점에서 K장학재단의 승소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5% 룰이 세금을 회피하면서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큰 주식 출연 행위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5% 룰의 입법 취지는 주식 출연 전 내국법인의 최대주주였던 자의 출연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 출연 후 내국법인의 최대주주가 되는 자의 출연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출연자와 공익법인 사이의 특수관계는 주식 출연 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출연자와 공익법인 사이에 특수관계가 성립하려면 재산을 출연하고 나아가 정관 작성, 이사 선임 등의 설립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법리에 따라 H가 K장학재단에 수원교차로 주식을 출연한 사실이 있더라도 재단 설립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H와 K장학재단은 특수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 결과 H의 주식 출연은 증여세 과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대법원은 판결했다.

편법적 제도 남용은 견제해야

위 대법원 판결은 공익법인에 대한 선의의 기부를 장려하면서도 편법적인 제도의 남용은 견제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익법인은 종교, 자선, 학술, 기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보완하고 있다. 공익법인에 대한 출연 행위는 장려해야 하고, 출연 재산에 증여세를 부과하려면 합당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다만 출연자가 공익법인을 기업의 지배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예컨대 출연자가 이미 설립돼 있는 공익법인 이사장 지위를 차지하거나 지인을 이사에 선임함으로써 공익법인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다. 이 경우도 규제할 필요가 없는지, 단순히 행정상 제재를 할 것인지, 세법상 증여세 등을 과세할 것인지, 상법상 주식 의결권을 제한할 것인지 등을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익법인은 각종 세제상 혜택을 얻는 만큼 출연재산은 출연된 목적에 따라 사용돼야 한다.

김승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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