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동굴·시장·극장 등 4개 우상 탓에 오류에 빠진다"
꿀벌처럼 재료 모아 지성으로 바꾸자며 귀납법 주장했죠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6) 프란시스 베이컨(하) 우상론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17세기 초 거의 모든 중대한 지식의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 작됐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근대 초기 학문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꼭 들어맞는다. 베이컨이 쓴 《신기관》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한 책이 기 때문이다. 사실 《신기관》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기관》이라는 제목은 아 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책인 《기관》에 맞서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을 세우겠다는 도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깨기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6) 프란시스 베이컨(하) 우상론
《신기관》이라는 책은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이라는 부제에도 함축돼 있듯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면 이 자연을 잘 알 수 있을지 그 방법을 탐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베이컨은 자연을 알고 지배하는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부수는 작업’과 ‘세우는 작업’을 했다. 그렇다면 베이컨은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세우고자 했는가? 베이컨은 ‘우상’ 비유와 ‘개미-거미-꿀벌’의 비유를 통해 이를 각각 설명하고 있는데, 비유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당시 지식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데 비유만큼 효과적인 방식도 없었으리라.

우상들 때문에 왜곡된 이미지 갖는다

우선 베이컨은 부숴야 할 대상을 ‘우상’에 비유했다. 우상은 영어로 ‘아이돌(idol)’이다. 요즘 한국에서 아이돌 하면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 선망의 대상이지만, 베이컨이 비유한 ‘우상’은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편견으로서 타파의 대상이었다. 먼저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뿌리박고 있는 편견이다. 인간의 마음은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거울과 같다. 따라서 여기에 비친 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다음으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연상시키는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의 특수성 때문에 생기는 편견이다. 각 개인은 자연의 빛을 차단하거나 약하게 만드는 동굴 같은 것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시장의 우상’은 인간 상호 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실재를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빠지는 오류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이란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 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베이컨이 보기에 지금까지 고안된 철학 체계들은 연극 대본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맹목적으로 이를 신봉하면 편견에 빠지게 된다.

베이컨은 참된 지식의 세우는 작업을 ‘개미-거미-꿀벌’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개미는 재료를 모으기만 하고 거미는 자신의 속에서 거미줄을 끌어내기만 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꿀벌은 꽃에서 재료를 모아 꿀을 만들어낸다. 즉 관찰과 실험의 결과만 수집하는 경험주의자가 개미와 같다면, 독단적 추리만 강조하는 합리주의자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걸 풀어서 집을 짓는 거미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된 철학자는 이성의 힘에만 의존하지도 않고, 실험 사실만 수집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꿀벌과 같이 모은 재료를 지성으로 변화시켜 자연에 존재하는 참된 지식을 알아내는 사람이다. 꿀벌의 방법, 이것이 바로 베이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대신해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방법론인 귀납법이다.

귀납법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6) 프란시스 베이컨(하) 우상론
한 가지 더! 베이컨은 자신이 제시한 귀납적 방법론의 한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귀납법은 수집된 자료로부터 일반적 원리를 도출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별적인 사실을 많이 모은다 해도 모든 사실을 모을 수는 없다. 따라서 한 가지라도 반대 사례가 나타나면 결론이 무너지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베이컨이 새롭게 제시한 귀납법은 이렇다. 부정적 사례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나서 긍정적 사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마치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상대편의 반론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자기 논리를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귀납법의 단점은 새로운 사례가 등장할 때마다 매번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점은 학문에서의 개방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은 학문의 진보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기억해 주세요

관찰과 실험의 결과만 수집하는 경험주의자가 개미와 같다면, 독 단적 추리만 강조하는 합리주의자 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걸 풀어서 집을 짓는 거미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된 철학자는 이성의 힘 에만 의존하지도 않고, 실험 사실 만 수집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꿀벌과 같이 모은 재료를 지성으 로 변화시켜 자연에 존재하는 참 된 지식을 알아내는 사람이다.

김홍일 < 서울 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