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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77호 2017년 12월 4일

서양철학 여행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4)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하)

사회 풍자 소설로서 《유토피아》는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거기에는 저자인 토머스 모어의 진솔한 생 각이나 주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유토피아》는 곳곳에 현실에 대한 풍자와 역설적 표 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풍자와 역설적 표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책이 재 미는 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유토피아’의 원래 제목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처음 출간될 당시 그 책의 원래 제목은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었다. 어느 책이든 책의 제목을 보면 당연히 그 안의 내용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마련이듯이, 《유토피아》도 원래 책 제목만 보면, 거기에는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의 유익하면서도 즐거운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글이 유익하고도 즐거울 것이라는 예상은 절반만 타당하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사회는 모든 인간이 소유와 생산에 있어서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풍요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은 사회로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즐거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우회적 비판을 알아차리라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즐거운 저작’이라는 표현에서 ‘즐겁다’라는 말은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역설적이다. 우선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를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비판적으로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즐거운 일일 수만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현실 제도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즐겁기보다 무거운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어가 살던 시대, 무소불위의 전제군주 헨리 8세 치하에서는 언론의 자유 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 체제를 비판하는 일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따라서 이를 즐거운 저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모어는 어떻게 이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을 돌파하고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한,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하나의 제목에 담아낼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어가 사용한 방식은 풍자라는 형식이었다. 이 풍자는 비판적인 내용을 비유로 표현하면서도 역설, 유머와 같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작품에서 풍자를 쓴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풍자라는 방식은 이를 알아채는 독자에 한하여 그에게 재미를 주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당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모어의 비판은 풍자가 갖는 보호색 때문에 같은 수준의 지성인들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가공인물 동원해 무제한 발언

참고로 모어가 사용한 방법 중의 하나는 《유토피아》에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의 이름들은 그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라는 의도로 작품의 목적을 위해 특별히 붙여진 그리스어 어원의 이름들이다. 예컨대 ‘히슬로다이우스’는 ‘무의미 제조자’라는 의미이고,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의미이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이런 명칭들은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목적만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순전히 가상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과 장소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허구적인 내용과 명칭들을 사용함으로써 모어는 마치 탈춤에서 ‘무제한 발언 허가를 받은 광대’처럼 비교적 안전하게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제가 되면 그저 광대 노릇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갈 구실을 마련함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모어는 당시 인클로저 운동으로 야기된 시대의 부조리뿐 아니라 왕들의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행동들, 즉 침략 전쟁을 일삼는 습관과 교묘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방식을 풍자할 수 있었다.

결국 《유토피아》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저자인 모어가 자신을 너무 많은 비판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억해주세요

모어가 사용한 방식은 풍자라는 형식이었다. 이 풍자는 비판적인 내용을 비유로 표현하면서도 역설, 유머와 같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작품에서 풍자를 쓴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풍자라는 방식은 이를 알아채는 독자에 한하여 그에게 재미를 주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당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모어의 비판은 풍자가 갖는 보호색 때문에 같은 수준의 지성인들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김홍일 < 서울 국제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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