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이상향과 비교해 현실의 산업혁명을 비판
예 인정한 유토피아… 완결되지 않은 상상이죠"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3)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에는 없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란 말은 다 소 역설적이다. ‘없는(ou) 장소(topos)’, 곧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들은 늘 이 세상에 ‘없는 곳’을 꿈꿔 왔다. 그래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누구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곳이 유토피아인 것이다.

현실에 없는 세상

유토피아라는 말은 16세기 초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지만, 워낙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이상향’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요즘 유토피아라는 말과 연관된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는 가상 사회를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부른다거나 과학기술에 의한 이상향을 일컬어 테크노피아(technology utopia)라고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하는 듯하다.

산업혁명 비판을 위하여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3)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필요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보다 나은 상태를 바라는 꿈이 있어야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없는 곳’을 꿈꾼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어쩌면 허망한 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가 터무니없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한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다. 그럴 때 유토피아는 비로소 현실을 비판하는 준거로 작용하게 된다. 비유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현실 사회를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사회라는 거울 앞에서 현실의 부조리는 한층 더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책에는 이상 사회를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현실을 비판하는 논리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유토피아》는 총 2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권은 산업혁명이 태동하는 시점에 영국에서 일어난 변화, 특히 인클로저 운동으로 수많은 농민들이 쫓겨나 빈민으로 몰락하는 상황을 보면서 현실이 지닌 부조리한 측면을 비판하고 있으며 제2권은 유토피아라는 섬에서의 이상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순서로 보면 당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그 다음에 대안으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모어는 제2권을 먼저 쓴 다음에 나중에 제1권을 완성하였다. 모어는 이상 사회라는 거울에 비추어 영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모순도 가득하게 들어있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3)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런데 문제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거울 역할을 해야 하는 유토피아가 이상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가 제시한 유토피아를 보면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할 방안들이 꽤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모순 또한 만만치 않은 유토피아다.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여기서 그리는 유토피아는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사를 하며, 똑같이 지어진 집에서 똑같이 일을 하는 곳이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노예와 용병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 활용하려는 유토피아인의 제국주의적 태도는 이중적인 모습마저 보인다. 비단 오늘날의 기준이 아니라, 《유토피아》가 저술된 당시의 상식으로 볼 때도 쉽게 긍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면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안한 이상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토머스 모어라는 사람은 유머와 풍자의 대가였다는 점이다. 이에 걸맞게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 보면 풍자와 역설이 넘친다. 어느 대목에서는 신랄하게 비판하다가도 자신의 정치적 부담과 연관된 민감한 문제에서는 답변 하지 않고 모호성과 풍자와 역설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이 점을 무시하고 그의 글을 기계적으로 읽고 적용하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완결되지 않은 상상이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며 유토피아 담론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23)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기억해주세요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가 터무니없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한 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다. 그럴 때 유토피아는 비로소 현실을 비판하는 준거로 작용하게 된다. 비유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현실 사회를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사회라는 거울 앞에서 현실의 부조리는 한층 더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홍일 < 서울 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