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병자'서 '성장엔진'으로

1분기 성장률, 美의 두 배 달해
공장 가동률은 사상 최고치
실업률은 2009년 이후 최저

'해체 위기' 한고비 넘긴 EU

'反EU' 극우 바람 잠잠해지자
자금 몰리며 투자·소비 살아나
프랑스·스페인 노동개혁도 '성과'
[이슈&이슈] 재정위기 딛고 부활한 유로존 경제… "황금시대 향해 가고 있다" 낙관론 커져
유로존 경제가 올 들어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올해와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주된 이유로 ‘유로존의 경기 호황’을 꼽았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유로존 경제가 물가 안정 속 성장이라는 황금기(golden era)를 향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로존 출범 후 최고의 상황

지난 6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1분기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로 미국(1.2%)의 약 두 배에 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유로존의 경기 회복은 올해 가장 놀라운 소식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유로존 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유로존 경제가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추락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그러나 2분기 2.3%, 3분기 2.5%로 갈수록 가팔라졌다. 3분기에는 그동안 약세를 보이던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선 까닭에 경제 성장세도 다소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이 같은 우려마저 불식시켰다.

유로존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던 실업 문제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작년까지 두 자릿수이던 유로존 실업률은 올 들어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9월 8.9%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이후 최저치다. 청년실업률은 18.7%(9월 기준)로 여전히 높지만 작년 9월(20.4%)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졌다.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자 유로존의 공장 가동률은 사상 최고치 수준(83.8%)으로 높아졌다. 기업의 투자 확대로 일자리가 늘고, 이로 인해 민간 소비가 증가하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시장이 개선되고 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초·중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노이트 코에르 ECB 이사는 최근 “경제 활력과 균형 면에서 현재 유로존 경제는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안정에 심리 개선돼

유로존 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7월 유럽의 싱크탱크 유로인텔리전스는 “유로존 위기는 향후 20년간 지속될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유로존을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 지출과 부채에 의존한 경제 성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단이 많았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경제가 올 들어 강한 회복세를 보인 가장 큰 이유로는 정치적 안정이 꼽히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글로벌 투자자와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유로존이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로 투자를 망설였다.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이들은 4월 프랑스 대선, 9월 독일 총선에서 EU 탈퇴를 기치로 내건 극우주의자들이 약진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프랑스 대선에서 친(親)EU 성향의 중도우파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되고, 독일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에 성공하면서 극우주의 약진 우려가 급속하게 사그라졌다

노동개혁으로 고질병 치유

일부 국가가 추진한 개혁정책도 경제 회복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페인 정부는 남유럽 재정위기 발발 직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해고 요건 완화를 포함한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주목한 폭스바겐이 스페인에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났다. 2011~2013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스페인 경제는 노동개혁 덕분에 2015년 2분기 이후 10분기 연속 3%대 성장세를 나타내 유로존 경제의 ‘우등생’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역시 마크롱 대통령 집권 이후 노동개혁과 감세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로 투자와 소비가 회복하고 있다. 프랑스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2.2%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위기 발발 이후 유로존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을 위한 개혁작업이 진행된 것도 유로존 경제 부활에 일조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로 실물경제 성장세가 급속하게 둔화되자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이 유로존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했다. 유로존은 단일통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금융감독 권한은 개별 국가에 분산돼 있어 체계적인 대응이 쉽지 않았다.

유로존 경제의 불안 요인이 없지는 않다. 노동생산성이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스페인 카탈루냐주의 분리독립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내년 상반기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정당 오성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다시 극우주의 바람이 유럽에 불어닥칠 가능성도 있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