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前 유통산업법에 규정 신설… 전국으로 확산
반발한 대형마트, 지자체 상대로 소송 제기

2심은 "소비자 선택권 제한" 마트 손 들어줬지만
대법원 "중소사업자 보호 위해 적법한 규제" 판결
일러스트=조영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jopen@hankyung.com
현재 농수산물 매출 비중이 55% 미만인 대형마트와 그 임대매장인 병원·식당·미용실·사진관 등의 부설 점포, 기타 준대규모 점포는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의무휴업이 강제되고 있다. 국회가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형마트 등의 영업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시장·군수·구청장이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밤 12시~오전 8시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공휴일 중 매월 1~2일의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듬해 4월에는 밤 12시~오전 10시 영업금지, 월 2회 휴일 의무휴업 등으로 규제를 강화한 재개정안이 시행됐다.

유통업체 “영업제한은 위법… 취소해달라”

2012년 2월 전북 전주시가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마트 영업규제 조례를 개정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은 그해 11월 제정된 조례를 근거로 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월 2, 4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했다.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GS리테일 등(원고)은 위 구청장들(피고)을 상대로 영업시간 제한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①원고가 대형마트에 해당하는지 ②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제한 처분이 임대매장에까지 적용되는지 ③피고의 처분이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인지 ④피고가 영업제한 시간과 일자를 완화하지 않고 법규에 정한 최대한도로 처분한 것이 재량권 불행사·해태(게을리함)에 해당하거나 비례원칙에 위반하는지였다.

2013년 1심은 영업제한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으나 이듬해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영업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안 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각 쟁점에 대해 ①법조문상 대형마트는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고 돼 있는데, 이 사건 대상 기업은 ‘점원의 도움을 받아 소매하는 점포’이므로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고 ②임대매장은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들의 영업까지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며 ③외국 기업의 국내 서비스 공급량 제한을 금지한 GATS 등 조항에 위배되고 ④맞벌이 부부 등의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등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피고의 영업제한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트 손들어준 高法, 구청 손들어준 大法

그러나 2015년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구청장들의 영업제한 처분이 적합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①대형마트에 해당하는지는 개설·등록된 형식에 따라 대규모 점포를 일체로서 판단하면 되므로 개별 점포의 실질이 요건에 부합하는지 살필 필요가 없고 ②법령상 영업제한 처분 상대방은 대규모 점포 등의 유지·관리를 책임지는 개설자에게 한정되므로 처분청이 임대매장 임차인에게 사전통지나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아도 절차상 잘못이 없으며 ③GATS 등의 협정은 국가 간 권리·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국제협정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私人)에 대해서는 효력이 직접 미치지 않아 처분 취소의 이유로 주장할 수 없고 ④유통산업발전법의 영업제한 조항은 중소사업자 보호라는 공익 목적 달성에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규제 입법이며, 행정청에 사실상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규제수단을 선택할 재량을 부여하고 있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상인 위해 소비자 통제… 생활과 괴리된 법”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골목상권 위해 마트 영업제한 타당"… 소비자 권리 문제 남아
이로써 대형마트 영업제한에 관한 논란은 적어도 소송 차원에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마트 영업이 제한되면 소비자 역시 점포 이용이 제한된다.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규제가 되는 것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특정 계층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를 통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중소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의 영업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미국 일부 주에 일요일 영업금지법이 있지만 주로 종교적 이유에 기인한다.

독일에는 모든 상점이 일요일과 공휴일에 문을 닫고 그 밖의 날에는 오전 6시~오후 8시에만 영업하도록 하는 상점폐점법이 있고, 영국에는 280㎡ 이상의 점포가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중 연속 6시간 이내에서만 영업하도록 하는 일요일 영업제한법이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건강 및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서 중소유통업자 보호와는 무관하다.

최영홍 < 고려대로스쿨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