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571호 2017년 10월 23일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 기업인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32> 교보생명 신용호

광화문의 교보문고는 그야말로 서울의 명소가 됐다. 앉고 서서 책을 읽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물론 책도 온갖 종류가 다 있다. 교보문고를 세운 사람은 보험회사인 교보생명의 창업자, 신용호 전 회장이다. 1980년 광화문에 교보빌딩을 신축한 뒤 건물 지하에 큰 책방을 넣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신용호 회장이다. 하지만 큰 반대에 부닥쳤다. 임원들부터 반대였다.

베이징에서 곡물회사

책방은 보험회사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교보는 교육보험의 약자다). 감독관청인 재무부도 보험사의 도서유통업 진출에 강력 반대했다. 본업과 관련 없는 업종이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서적 유통이 사회공헌 사업임을 내세워 설득에 성공했다. 신 회장은 교보문고가 ‘남녀노소, 부자, 가난한 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 가 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정작 신용호 자신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생인데 집안에 항일 민족 지사들이 많아서 일본인 학교를 다니기 어려웠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없었다. 17세부터 작정을 하고 3년간 매일 책을 읽으면서 독학을 했다고 한다. 19세가 되던 1936년 청년 신용호는 만주로 가서 대련중학교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집안 어른인 신갑범의 소개로 시인 이육사를 만나게 된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그 시, <광야>를 쓴 시인 이육사 선생이다. 이육사는 그에게 민족자본을 만드는 일을 하라는 당부를 한다. 24세 되던 1941년,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서 북일공사라는 곡물회사를 세웠고, 거기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학비 대주는 보험은 어떨까?

1946년 중국에서 서울로 돌아온 신용호는 출판사를 시작했다. 국민교육과 민족자본 형성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아쉽게도 출판사업은 실패로 끝났지만 국민교육과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이 미친 곳은 보험이었다. 자식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학비를 대주는 보험이라면 국민 교육에도, 민족자본 형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교육열이 강하기 때문에 담뱃값을 아껴서 보험을 들라고 설득하면 가입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58년 이렇게 해서 교육보험이 탄생했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보험이었다. 생명보험, 손해보험은 있지만 교육보험은 없었다. 정부의 허가를 받기 위해 법까지 고쳐야 할 정도로 교육보험은 낯선 개념이었다. 당연히 실패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용호는 그들의 비관적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1967년 창업 9년 만에 374억원의 계약액으로 보험업계 1위에 올라섰다. 1983년에는 세계보험대상까지 받았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계약자 자녀의 학비로 지급됐고, 여유자금은 공장 건축 등 경제개발에 투자됐다. 1980년에는 교보문고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서점을 세워 우리나라 서적 출판과 유통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국민교육과 민족자본 형성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훌륭히 달성한 셈이다.

대한증권 인수해 교보증권 세워

1990년대에는 종합금융기업으로 도약을 이룬다. 1993년 대한증권을 인수했다. 지금의 교보증권이다. 1995년에는 하나은행 주식 지분 8%를 인수해 은행업에도 진출했다.

그의 일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교육을 보험 영역으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었다. 될법하지 않은 일들을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 노력으로 이뤄냈다. 정도경영도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평소에 그는 ‘거저와 비밀은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또는 남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태도 덕분에 소비자와 비즈니스 상대방들의 신뢰를 얻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2003년 신용호는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일생이었다. 이제 교보그룹은 장남인 신창재 회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기억해 주세요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는 금융업과 출판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이 두 회사는 작은 곡물회사에서 태동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용호는 중국 베이징에서 곡물회사를 차렸으나 실패하고 귀국했다. 귀국 이후 그는 출판사를 차렸으나 역시 실패했다. 1958년 그는 교육보험이라는 생소한 보험을 만들었다. 교보생명과 교보문고의 교보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