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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70호 2017년 10월 16일

Focus

[뉴스 인 포커스]  트럼프 정부 ''미국 산업 피해'' 들어 ''세이프가드'' 예고

요즘 미국에서 팔리는 세탁기 세 대 중 한 대는 한국 기업 제품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은 2014년 23%에서 올 상반기 31%로 부쩍 높아졌다. 반면 기존 1위 업체인 미국 월풀의 점유율은 41%에서 38%로 주춤했다. 삼성과 LG는 혁신적 신제품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하면서 미국에만 연간 1조원어치의 세탁기를 수출하고 있다.

잘나가는 한국 세탁기가 못마땅해서일까. 미국이 세이프가드(safeguard: 긴급 수입제한 조치) 발동을 예고하며 견제에 나섰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5일 삼성·LG 세탁기에 대해 “미국 전자제품산업에 피해를 입혔다”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ITC 판결이 무역 제재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고 본다. ITC가 다음달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게 된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물품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때 해당 품목의 수입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시작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7년 미국을 포함한 23개국은 관세장벽을 허물어 무역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GATT를 체결했는데, 시장 개방으로 일부 취약 산업이 무너지는 혼란을 막기 위해 세이프가드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세이프가드는 합법적인 무역장벽이긴 하지만 발동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 WTO는 산업의 ‘심각한 피해’가 입증될 때 세이프가드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은 이 규제를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ITC의 이번 판결은 “삼성과 LG가 월풀과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미국 매체 더힐)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조차 나온다.

문제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 정부가 세탁기뿐 아니라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잇따라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올 들어 한국에서 수입하는 철강, 태양광, 변압기, 화학제품 등에 대해 산업 피해 판정, 반덤핑 조사, 관세율 인상 등으로 줄줄이 견제에 나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도 미국의 압박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하면 트럼프식 밀어붙이기 전략에 한국이 질질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통상전문가들은 WTO 제소와 같은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은 자국 기업의 주장만을 옹호하는 것이어서 “WTO가 문제 삼을 수 있다”(뉴욕타임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반덤핑 제재가 WTO에서 패소한 사례가 많았다.

관세·쿼터·보조금·검역… 무역장벽 종류는 다양해요

국가 간의 자유무역을 제약하는 인위적 조치를 무역장벽(trade barrier)이라 부른다. 이 장벽을 최대한 없애려는 것이 자유무역주의이고, 반대로 탄탄하게 쌓자는 것이 보호무역주의다. 무역장벽에는 위에서 살펴본 세이프가드 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크게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관세장벽은 수입품에 물리는 세금, 즉 관세(tariff)를 활용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면 그만큼 값이 비싸져 판매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장벽을 높이는 게 나라 경제에 꼭 도움이 되진 않는다. 1930년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2만여 개 품목에 사상 최고 관세율을 적용하는 ‘스무트-홀리법’을 발효했다. 그러자 영국 등 23개 무역 상대국이 관세율을 덩달아 높이는 보복조치에 나섰다. ‘관세 전쟁’이라 불린 이 사건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를 남겼다. 불과 4년 새 전 세계 무역액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미국은 대공황까지 겹쳐 국내총생산(GDP)이 50% 이상 급감했다.

비관세장벽은 관세 부과 이외의 모든 방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수입품에 대한 수량 제한, 가격 통제, 유통경로 제한 등을 비롯해 자국 품목에 대한 보조금 지급, 외국인에 대한 투자·정부조달 참여 제한 등이 모두 해당된다. 통관, 위생검역 등 행정절차를 까다롭게 해 간접적으로 수입을 억제하는 것도 비관세장벽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외국 제품을 통관할 때 포장지의 깨알 같은 글씨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퇴짜를 놓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자유무역협정(FTA) 확산 등으로 관세장벽은 크게 낮아지는 추세지만, 비관세장벽은 여전히 큰 장애물”이라며 “관세와 달리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렵고 국제적 가이드라인도 불분명해 국제기구를 통한 관리·감독에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주의 시사용어-세이프가드

우리말로는 ‘긴급 수입제한 조치’라고 한다. 특정 물품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거나 피해를 볼 우려가 있을 때 수입량 제한, 관세율 인상 등을 통해 해당 품목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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