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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69호 2017년 9월 25일

소설가와 떠나는 문학여행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7)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세계를 감동시킨 제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언제 읽어도 깊은 감동과 깨끗한 마음을 안겨주는 성장소설의 고전이다. 성장소설은 어린 주인공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아에 눈뜨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화자의 영악하지만 순수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도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질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여섯 살이 채 안 된 제제, 우리나라 셈으로 따지면 일곱 살쯤 된 아이일 것이다. 1968년에 브라질 작가가 발표한 작품 속의 제제와 50년이 지난 지금의 어린이는 얼마나 다를까. 환경은 차이가 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발표 당시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19개국 32개 언어로 번역돼 미국을 비롯, 유럽과 공산권에까지 소개됐으며 파리 소르본대에서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1978년에 소개돼 지금까지 3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제제처럼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어린 시절을 친척집에서 보내야 했다. 작가의 유년시절 체험을 눈에 보일 듯 재미있고 진솔하게 그린 것이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도를 넘은 악동 기질로 주변 사람을 종종 위험에 빠뜨리는 제제는 반대로 너무도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동생 루이스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단단한 제제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구두닦이로 나설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아이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켜 가족에게 맞을 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뱉어 매를 버는 별 수 없는 다섯 살이다. “말로밖에 저항할 수 없어서 나쁜 말을 해버린다”는 제제의 변명에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하게 된다. 무자비하게 때리는 아빠와 누나 앞에서 다섯 살짜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일 테니.

제제는 가장 믿고 따르는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집에서는 제가 좋은 일을 해도 나쁜 일이 돼 버려요. 동네 사람들도 제가 나쁜 짓 한 것만 알고 있어요. 악마가 내 마음 속에 바람을 붙어 넣나 봐요”라고 하소연하며 겨우 속을 풀어낸다.

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못 해주는 실업자 아빠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자녀를 돌볼 틈이 없는 엄마, 가난에 찌들어 화합할 여력이 없는 가정이다. 똑똑한 데다 재기발랄하고 언변까지 뛰어난 제제는 부모의 도움 없이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친다.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라임오렌지 나무와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주는 글로리아 누나에게 위로받으며 제제는 굳세게 자신의 성장일지를 써나간다.

멋진 어른을 기다리는 아이들

제제를 진정으로 응원해주는 뽀르뚜가 아저씨와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의 따뜻함에 매료돼 사람들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즐겨 읽는지도 모른다. 유리에 찔린 제제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해주고 아들처럼 돌봐주는 뽀르뚜가 아저씨,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제제에게 생과자 사먹을 돈을 쥐여주는 빠임 선생님 같은 멋진 어른이 많아져야 아이들은 힘을 낼 수 있다.

아빠처럼 따르던 뽀르뚜가 아저씨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자 충격을 받은 제제는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앓다가 가까스로 회복된다. 제제는 다시 취직한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겠다고 말해도 그다지 기쁘지 않고, 라임오렌지 나무가 잘릴지 모른다는 말에도 많이 슬프지 않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제제가 겪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살벌하고, 가슴 아프면서도 뭉클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면서 따뜻한 형과 누나, 책임감 있는 어른이 돼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만든다.

어릴 때 알았던 제제를 청소년, 혹은 장년이 돼 다시 만나면 느낌이 다르다. 그때그때 색다른 무늬를 선사하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로 가을에 새로운 감동을 느끼길 권한다.

이근미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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