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9년 독일을 ‘유럽의 병자(病者)’라고 꼬집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했던 독일이다. 10% 넘는 실업률에 수출 부진, 생산기지의 해외 이탈, 과도한 복지 부담, 통일비용 지출까지 겹쳐 경제와 재정이 점점 나빠졌다. 이랬던 독일이 요즘엔 ‘유럽의 우등생’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4%대로 낮아졌고,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EU) 평균을 훌쩍 웃돌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부활의 비결은 독일 정부가 밀어붙인 고강도 구조개혁에 있다. 2003년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을 내놨다. 복지, 노동, 세제, 교육, 행정, 산업정책 등 다방면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정책을 담았다. 그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재취업 교육과 구직 지원을 강화해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뜯어고치는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 핵심이었다. 중도 좌파 정당이었지만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해 방만한 복지와 경직된 고용구조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이런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인 정치적 대가는 혹독했다. 슈뢰더 정권은 2년 뒤 총선에서 대패해 정권을 내주고 조기 퇴진했다. 하지만 총선 승리로 정권을 잡은 중도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 전 총리의 ‘아젠다 2010’을 원안대로 따랐다. 몇 년 뒤부터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경제가 차츰 활기를 되찾았다. 초반에 반발하던 노동자들도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 고통 분담과 상생에 동참했다.

독일의 부활은 한국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도 좌파 정당이 유례없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정권을 탈환한 중도 우파 정당이 이런 정책을 일관성 있게 이어갔다는 것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달 초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리더라면 선거 패배를 감수하고라도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며 한국을 향해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독일을 되살린 ‘아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에 대해 4, 5면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