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는 사전적으로 ‘싹수’의 사투리로 풀이된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싹수가 있다/없다/보인다/틀렸다’처럼 쓰인다.

2003년 4월 어느날, 국회 본회의장에 한 국회의원이 흰색 면바지 차림으로 등장했다. 상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남색 재킷에 라운드 티를 받쳐 입었다. 이날은 며칠 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그가 의원선서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원한 자리였다. 본회의장이 한순간 술렁였다. 곧바로 의원들 사이에서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비난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의원 수십 명이 퇴장했다. 국회의원 선서도 다음날로 미뤄졌다. 이른바 ‘빽바지 소동’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주인공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이다.

‘싹수’의 방언이지만 의미 달라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왕싸가지 밥맛'은 어디서 왔을까요?
명쾌한 분석력에 달변까지 갖춘 그는 정계에서 은퇴한 뒤 요즘은 방송활동 등을 통해 유머와 여유를 함께 보여주면서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고 있다. 그에게 과거 따라다니던 별명이 ‘싸가지’다. 2005년 한 동료 의원이 그에게 ‘저렇게 옳은 얘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를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공개편지를 보내면서 ‘싸가지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싸가지’는 우리말에서 특이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 그것은 그동안 살펴본 의미 변화의 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일상에서 그냥 ‘싸가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온당한 말일까? “걔 싸가지야” “이런 싸가지를 봤나”처럼 쓰곤 한다. 한술 더 떠 강조하고 싶을 땐 ‘왕싸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아직 어법상으로 정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싸가지’의 의미가 살아 있는, 온전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싸가지’는 사전적으로 ‘싹수’의 사투리로 풀이된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한다. ‘싹수가 있다/없다/보인다/틀렸다’처럼 쓰인다. 관용어로 ‘싹수(가) 노랗다’고 하면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싹수없다’라고 하면 ‘장래성이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싸가지 없다’가 온전한 표현

그런데 방언을 써서 ‘싸가지 없다’라고 하면 뜻이 달라진다. 이는 ‘버릇없이 아래위도 모른다’는 뜻이다. ‘싹수 있다’와 ‘싸가지 있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또 ‘싹수가 노랗다’라는 말 대신에 ‘싸가지가 노랗다’라고는 하지 않는 걸 보면 ‘싸가지’와 ‘노랗다’는 결합하지 않는다. 결국 싸가지는 싹수의 방언이지만, 지금은 의미와 용법이 서로 달라진 셈이다. 싸가지는 사람이 갖고 있는 예의범절 등 인격과 품성을 나타내는 정신적 의미를 담은 말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사전에서도 이를 독립된 단어로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을 가리켜 “걔 싸가지야”라고 하는 것은 본래 “걔 싸가지 없어”라는 게 온전한 표현이다. 여기서 부정어를 생략하고 의인화해 단순히 ‘싸가지’란 말로 대신하는 것이다. 의미 이동인 셈이다. 다만 이런 용법들은 아직 규범적으로 허용된 게 아니므로 글에서 써서는 안 된다.

“그 사람 밥맛이야.” “에이 얌통머리 같으니….” “이런 채신머리하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이런 말도 ‘싸가지’와 같이 의미 이동 중인 말로 볼 수 있다. 모두 ‘~없다’와 어울려 써야 완성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왕싸가지 밥맛'은 어디서 왔을까요?
되는 말인데, 부정어를 생략한 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어법적으로 인정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회에서는 현실언어에서 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변화 과정을 살펴본다.

한경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