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저택에서 정신이상으로 지쳐가는 친구를 찾아간 나

으스스한 묘사…죽었던 부인이 나오고, 저택이 부서지고

더워지는 계절,천재작가의 추리소설에 한번 빠져볼까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8)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추리소설 개척자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프랑스의 기 드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힌다. 포는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로 활동했는데 SF, 팬터지, 추리, 공포 문학의 원조를 따질 때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대단한 작가이다. 현대화된 소설의 틀을 마련한 독창적인 이론가면서 추리소설 개척자인 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현대 단편소설이 체계화되었다.

포의 추리는 소설 앞부분에 단서를 제공하고, 특정한 인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지금까지 모든 추리 형식의 소설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정석이다. 사건을 시간 경과에 따르는 평이한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매듭을 동시다발적으로 풀어나가는 새로운 서술법으로 문학을 풍부하게 만든 것이다.

<어셔가의 몰락>은 단편의 요체를 환상과 추리에서 찾은 포의 문학론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환상과 현실의 연결 속에서 단서가 계속 제시되는 어셔가의 몰락 과정을 따라가 보자.

‘음산하고 어둡고도 조용하던 가을 어느 날, 구름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낮게 하늘을 내리누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요즘처럼 더울 때 딱 읽기 좋은 내용이다. ‘나’는 음침한 저택의 주인 로데릭 어셔와 몇 주일을 함께 지내기로 한다. 어렸을 적 유쾌한 친구였던 로데릭이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정신이상으로 괴롭다’는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음산하고 곰팡이 낀 풍경 묘사 ‘탁월’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8)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음산한 주변 풍경, 곰팡이와 거미줄이 뒤덮은 저택, 부서진 석조물 등 포는 소설 앞부분을 온통 저택과 주변 분위기 묘사에 할애하며 사건을 예고한다. ‘눈에 띌까 말까 한 균열이 건물 앞쪽 지붕에서 시작하여 갈지자 형태로 벽을 타고 내려와 음울한 빛을 띤 늪의 물속으로 사라지고 있음’ 같은 문장을 유심히 봐두어야 추리에 도움이 된다.

창백한 피부색, 불가사의하게 번쩍이는 눈빛, 헝클어진 망사 같은 머리의 어셔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두려움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환영과 투쟁을 벌이는 동안, 나는 내가 생명과 이성을 모두 포기해야만 하는 시기가 조만간 오리라고 느끼고 있지”라고 말한다.

우울증과 기이한 정신상태 속에 놓여 있는 로데릭과 함께 지내며 나도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로데릭의 누이동생인 매들린 부인은 소설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지만 묘사나 암시, 등장 장면이 적은 편이다.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복선이 빠진 건 없는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어셔가의 몰락>을 능가하는 작품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던 매들린 부인이 죽고, 둘은 시신을 지하실에 임시로 안치한다. 동생의 죽음으로 로데릭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위로하기 위해 책을 읽어주던 나도 시시각각 좁혀오는 이상한 소리에 함께 미쳐간다. 단편소설의 마지막 두 페이지에 수의를 몸에 감은 매들린 부인이 등장하고 저택은 산산이 부서진다.

환상적인 공간과 현실 속의 화자가 잘 융화되고 있는지, 소설에서 시와 서가의 책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등 짧은 소설이지만 짚으면서 읽어야 할 포인트가 많다. 고풍스럽고 괴기스러운 장치들, 화려한 문체도 꼼꼼히 음미해볼 대목이다.

‘포’ 작품을 사랑한 보들레르

천재작가 포는 1809년에 태어나 세 살 때 고아가 되었고 앨런가에 양자로 들어간 이후에도 힘든 생활을 했다. 불운하고 궁핍했던 포는 아내가 결핵으로 몸져눕자 더욱 알코올에 의지하면서 우울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건강을 돌보지 않은 포는 길에서 쓰러져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이 엄청난 환호와 찬사를 받게 될 줄 모른 채.

이근미 소설가
이근미 소설가
불운한 천재들은 대개 시대를 앞서 가는데 포도 그랬다. ‘교훈보다 미의 창조’를 주창했던 포의 생각은 당시 미국 문학을 주도하던 청교도적인 사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포의 천재성을 유럽 작가들이 발견했다.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며 포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에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세계적으로 장르소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포의 작품들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포의 천재성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