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1960년대 해외에서 옷감 팔기로 사업 시작
부실기업 사들여 회생시켜 대우그룹 일궈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서울역 정문을 나서면 붉은색 정사각형 건물이 시각을 압도한다. 서울스퀘어다. 지금은 싱가포르 알파인베스트먼트의 소유이지만 1999년까지 대우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단한 기업이었지만 갑자기 무너졌다. 대우그룹을 세우고 키워냈던 김우중. 그의 사업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해외 지향성과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
이것이 다른 누구와도 다른 김우중 식 사업방식의 핵심이었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15) 대우신화 김우중 회장
■ 기억해 주세요^^

재계 순위 2위였던 대우그룹은 20세기 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해체됐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신화는 마치 신기루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싱가포르 다니며 옷장사···판매 ‘귀재’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15) 대우신화 김우중 회장
1967년 김우중은 대우실업을 세우고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에 ‘트리코트’라는 옷감을 팔러다녔다. 낯선 외국의 바이어(구매자)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산 옷감을 잘도 팔았다. 그는 판매의 귀재였다. 주문량이 늘어나자 공장들을 사들여서 직접 제조에 나섰다. 내수판매는 하지 않았다. 국내 기존 중소기업들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수출 기업이 많았지만 대부분 주력은 내수시장이었다. 국내 판매에서 성공한 뒤에 해외시장으로 나아갔다. 김우중은 독특하게도 해외 수출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성공했다.

1970년대 중반 김우중은 건설업으로 진출했다. 그 무렵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구 최대의 단일공사라는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자극받은 다른 재벌기업도 앞다퉈 중동건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우중은 그들이 안 가는 다른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가 택한 곳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북한 대사관만 있을 뿐 한국과는 미수교국이었다.

감원보다 생산 늘려 부실기업 살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15) 대우신화 김우중 회장
김우중은 탄자니아의 누메이리 대통령이 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위해 영빈관을 짓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는 처지였다. 김우중은 누메이리를 만나 영빈관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공사대금은 돈 대신 탄자니아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면화로 달라고 했다. 뭐든지 팔 자신감이 있는 김우중이었다. 면화를 팔면 그게 바로 돈이었다. 누메이리는 당연히 수락했고 영빈관은 지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탄자니아와 외교관계도 맺게 됐다.

미수교국과의 비즈니스는 리비아로도 이어졌다. 이 나라에는 도로, 주택, 비행장을 지어주고 석유를 받았다. 김우중의 대우는 이렇게 남들이 가지 않는 나라에서 시장을 넓혀갔다.

김우중의 또 다른 전략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였다. 매우 빠르지만 위험한 전략을 뜻한다. 부실기업 회생전략이 그랬다. 부실기업을 맡은 사람은 대개 인력과 사업을 줄인다. 김우중은 오히려 생산을 늘렸다. 그렇게 해서 원가를 낮추고 판매를 늘려 기업을 회생시켰다.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을 만드는 과정이 그랬다. 1970년대 말 우여곡절 끝에 거의 망한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옥포조선소(대우조선)를 떠맡았다. 그는 사업을 줄이는 대신 배를 빨리 건조하고 대우중공업의 디젤엔진을 거기에 얹어서 팔았다. 두 회사 다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같은 대우그룹의 주력기업들이 그렇게 생겨났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경영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같은 전략을 펴서 성공했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국영기업들은 모두 부실했다. 선진국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해서 살리겠다는데 대우는 구조조정 대신 오히려 생산을 확장해서 살리겠다고 하니 모두들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일이었다. 빚이 많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갚기 위해 늘 열심히 팔아야 했다. 삐끗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그 위험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닥쳤다. 환율이 올라서 대우의 빚은 눈덩이처럼 늘었다. 호랑이 등에서 떨어진 것이다. 김우중은 정부와 은행들에 잠시만 편의를 봐주면 수출을 늘려서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정부와 은행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부도가 났고 대우는 무너졌다. 김우중과 대우를 멀리까지 데려다 준 그 호랑이에게 물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우중은 위대한 기업가였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