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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가 추구하는 경제철학을 알아보고 그것이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토론해보자.

김형진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starhawk@hankyung.com
[Cover Story] 몽펠르랭소사이어티가 주창하는 경제적 자유란…작은 정부·규제 철폐·감세가 핵심
MPS는 자유주의 석학 하이에크가 주도

세계 대공황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지나가고 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947년 4월 어느날.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작은 시골마을 몽펠르랭에 10여개국에서 온 경제학자, 철학자들이 모였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비롯해 독일의 발터 오이켄, 미국 시카고대의 프랭크 나이트, 철학자 카를 포퍼, 젊은 두 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도 참석했다. 몽펠르랭소사이어티의 첫 모임은 이렇게 시작됐다.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런던정경대 교수를 맡고 있던 경제학자 프레드릭 하이에크였다. 그는 참석자를 직접 고르고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 초청편지를 써서 보냈다. 전쟁 직후여서 여권이 제대로 발급되지 않았던 때였다. 우여곡절 끝에 모인 이들은 열흘 동안 몽펠르랭에 머물며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를 되살려 전파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당시 세계는 극심한 혼란기에 있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발생한 대공황으로 경제가 파탄났다. 이런 와중에 파시즘과 나치즘, 스탈리니즘 같은 전체주의가 세계를 황폐화시켰다. 또 공산주의 같은 계획경제가 유행처럼 번져 빈곤을 더 악화시켰다. 이런 세계적 혼란 속에서 이들 석학은 자유주의를 살려내 세계를 치유하려 했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한 이들은 사유재산, 경제자유, 법치주의 등이 저성장과 빈곤에 허덕이는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유주의로 재건한 독일·영국·미국

[Cover Story] 몽펠르랭소사이어티가 주창하는 경제적 자유란…작은 정부·규제 철폐·감세가 핵심
몽펠르랭소사이어티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큰 정부가 아닌 작은 정부를 강조한다. 정부가 돈을 펑펑 쓰는 재정 확대에 반대하고 각종 규제 철폐와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며 감세와 엄격한 통화관리를 내세운다. 모든 정보를 다 가지지 않은 정부와 관료들이 시장에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시장은 왜곡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은 더 떨어진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몽펠르랭소사이어티가 주장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첫 성공사례는 바로 독일이었다. 1949년 스위스 셀리스베르크에서 열린 제2회 몽펠르랭 총회에 참석해 회원이 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당시 서독 재무장관이었다. 그는 1956년 베를린 몽펠르랭 총회를 유치했고 이 자리에서 ‘자유세계의 경제전략’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생산통제를 철폐하고 가격을 자유화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는 1963~1966년 총리로 일하면서 서독 경제를 바꿔놨다. 우리가 아는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지도자가 됐다.

영국도 뒤를 이었다. 마거릿 대처 총리(재임기간 1979~1990년)는 몽펠르랭 주창자인 하이에크 교수의 경제철학을 신봉했다. 대처 총리는 대학 재학 시절 그가 쓴 《노예의 길》(1944)을 읽고 감명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대처 총리는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워 당시 영국을 골병들게 한 정부 개입 경제를 뜯어고쳤다. 이후 영국 경제는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재차 탈바꿈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자유주의경제 철학을 실행했다. 레이건은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친기업 정책 등 시장 친화적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장기 호황의 발판을 마련했다. 레이거노믹스를 만든 관료 77명 가운데 22명이 몽펠르랭소사이어티 회원이었다고 한다.

MPS 서울총회의 의미

몽펠르랭소사이어티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하이에크는 1974년 노벨상을 받았다. 뒤이어 1976년에는 첫 회의 때 막내로 참석했던 밀턴 프리드먼이 받았다. 이어 조지 스티글러(1982), 제임스 뷰캐넌(1986), 모리스 알레(1988)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로널드 코즈와 게리 베커가 1991년, 1992년 연이어 받았고 2002년에는 버논 스미스가 전통을 이었다. 이번 서울총회에 참석한 라스 피터 한슨 교수는 2013년 선배들의 뒤를 이었다.

몽펠르랭소사이어티 서울총회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은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한국이 북한처럼 1인독재의 사회주의를 채택했다면 지금도 빈곤에 허덕이고 있을 것은 뻔하다. 이번 서울총회는 한국이 거둔 성공과 번영을 축하하는 동시에 한국에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자리이기도 했다. 몽펠르랭 회원들은 오는 11월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작별했다.

김형진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starhaw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