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첩'은 '싸움에서 크게 이기는 것'을 뜻한다. 이미 싸움이 끝나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싸움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대첩'은 싸움이 끝난 뒤에나 쓰는 말이죠
제19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대선후보들은 전국을 누비며 유세전(遊說戰)을 펼쳤다. 이를 전달한 언론 보도용어 가운데 유념해 살필 단어가 있다. ‘대첩(大捷)’이 그것이다. ‘대선후보들 수도권 대첩에 참석.’ ‘TV 토론주간에도 치열한 유세전…TK(대구·경북) 대첩.’ ‘광주대첩에 1만명 몰려….’ 이런 표현은 얼핏 흘려 넘기기 십상이지만, 모두 틀린 말이다.

싸우는 도중엔 쓸 수 없어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대첩'은 싸움이 끝난 뒤에나 쓰는 말이죠
우선 ‘대첩(大捷)’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이 말은 ‘싸움에서 크게 이기는 것’을 뜻한다. 이미 싸움이 끝나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싸움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교 교육에서 국사 과목 시간에 배우는 귀주대첩이니 한산도대첩이니 할 때의 그 대첩을 생각하면 된다. 사전에서는 ‘대첩’과 비슷한 말로 ‘대승’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는 이 ‘대첩’이 많다. 귀주대첩, 한산도대첩 외에도 행주대첩을 비롯해 명량대첩, 살수대첩, 진주대첩, 청산리대첩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단어화해 사전에도 올라 있다. 이런 단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첩’은 이미 전투가 끝난 뒤 크게 이긴 싸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선거운동을 하는 도중에 ‘대첩’을 쓰면 단어를 잘못 쓴 것이라 읽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는 아마도 대첩이란 말을 ‘대전(大戰)’ 정도로 알고 쓴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한자 공부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되는 것인지, 또는 우리말 어휘력 공부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인지 명확지는 않지만 우리말을 왜곡해 잘못 쓰는 것임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론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말이 남발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 SBS TV가 지난해 5월 새로운 형식의 예능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스타꿀방대첩 좋아요’도 제목이 생뚱맞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목만 봐선 이게 무슨 뜻인지, 프로그램 성격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도 ‘대첩’을 썼는데 이 역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쓴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니 자연히 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그보다는 ‘큰 싸움’ ‘한판 승부’ ‘맞짱 뜬다’ 등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아 써야 할 곳이다.

빌려준 돈은 대출금, 빌린 돈은 차입금

우리말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래어 오남용만 경계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세분화된 언어가 필요한데 국어에서는 새로운 우리말 창출은커녕 있는 말조차 점차 두루뭉술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런 현상은 이미 우리 언어생활에서 넘쳐나고 있다. ‘대출금’과 ‘차입금’을 구별하지 않는 것도 그중 하나다. ‘대출금’은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을 발간했을 때만 해도 그 의미가 ‘금융기관에서 빌려준 돈’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수정 보완된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은 ‘금융 기관에서 빌려준 돈. 또는 금융 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풀이했다. 빌린 돈이나 빌려준 돈이나 모두 ‘대출금’이 됐다. 정반대 개념의 말을 똑같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지 의문이다. 일단 논리적으로는 모순이고, 현실적으로는 자칫 ‘말이란 대충 통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이끌 위험이 있다. 빌린 돈 또는 꾼 돈은 차입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