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12) 이병철 회장의 ‘결정적 건의’
■ 기억해 주세요^^

박정희 의장이 5·16 쿠데타 직후 이병철 회장을 집무실로 불러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대답이 바로···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이병철 "기업인 잡지 말고 공장 지어 경제 기여토록"...박정희, 시멘트·비료·전자·석유화학 민간에 맡겨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5번 출구를 나오면 르와지르호텔이 있다. 원래 미나카이백화점이 있던 자리인데 해방 직후 원호처를 거쳐 국가재건최고회의 본부로 쓰이다가 지금은 호텔 건물이 들어섰다. 56년 전 5·16 쿠데타 주동자인 박정희 장군과 삼성물산의 이병철의 운명적 만남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1961년 5월16일 직후, 서울 분위기는 살벌했다. 정권을 장악한 군인들은 기업인들부터 잡아들였다. 명분은 부정축재자 검거였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기업 오너들이 대상이었다. 이병철도 당연히 포함됐다.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을 성공시킨 덕분에 삼성은 재계 1위로 올라서 있었다.

일본에 머물다가 소식을 듣고 귀국한 이병철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명동 메트로호텔(롯데백화점 건너편 명동 뒷골목)에 연금됐다. 그런데 다음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감옥행을 각오한 이병철이 끌려간 곳은 박정희 장군 집무실이었다. 지금 르와지르호텔이 서 있는 그 자리다. 박정희는 이병철에게 기업인 검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병철은 부당하다고 답했다.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것은 좋지만 사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 부정축재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가 주도 경제가 아니었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이병철 "기업인 잡지 말고 공장 지어 경제 기여토록"...박정희, 시멘트·비료·전자·석유화학 민간에 맡겨
박정희는 이병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병철은 기업인들을 잡아 가두는 대신 그들에게 큰 공장을 세워서 경제성장에 기여하게 하라고 제안했다. 맞는 말이라고 판단은 박정희는 정책방향을 그렇게 정했다. 시멘트산업, 전자산업, 비료산업,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 등 대규모 기간산업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 기업가에게 맡겨나갔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하이닉스, GS칼텍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들은 그런 정책의 결과들이다.

박정희의 이 같은 정책은 2차대전 이후에 새로 독립한 나라 중에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대다수 신흥독립국은 대규모 기간산업을 국영기업으로 건설했다. 경영은 공무원이 직접 맡았다. 미국,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은 민간기업이 대규모 기업과 산업을 만들어냈지만 신흥독립국의 정치인과 국민은 그런 방식을 싫어했다. 자본주의 방식은 부패와 타락의 원인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방식 대신 소련 스탈린이 추진한 국가 주도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정의롭다고 여겼다. 브라질, 인도, 파키스탄, 대만 등 대다수 나라가 국영기업 방식으로 경제 개발을 추진했다. 영국은 선진국인데도 민간 대기업을 국영화해 나갔다. 그런데 박정희는 대규모 산업을 민간 기업가에게 맡겨서 건설했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따랐다. 대기업 위주 정책이라며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정희 방식으로 추진한 산업 중에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이 나왔다. 국영기업 방식을 택했던 다른 신흥독립국들은 세계적 산업을 일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경련 탄생과 역사적 소멸

그 과정에서 생겨난 조직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다. 초대 회장은 이병철이었다. 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하는 창구로 설립했지만 정부 역시 대기업에 대한 지시와 요구사항을 전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안타깝게도 이 전경련이 정경유착과 부패의 오명을 쓰고 사경을 헤매는 처지에 놓였다.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기업들이 정치권에 돈을 줘온 것은 사실이다. 해외 차관을 들여올 때 일정 비율을 여당에 내야 하는 일이 일상화됐을 정도였다. 야당 정치인들에게도 일종의 보험금처럼 돈이 전달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돈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은밀하게 건네졌지 전경련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전경련은 공식적인 모금 창구 역할이었는데도 마치 모든 뇌물의 통로인 것처럼 대중적 이미지가 굳어졌다. 급기야 대중과 정치권으로부터 문을 닫으라는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경위야 어찌됐든 전경련은 이제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협조적이었지만 이제 태도를 바꿔서 정권과 거리를 둬야 한다. 그래야 정경유착의 의심을 떨쳐버리고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전경련이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