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가지다’가 쓰이는 용례는 너무나 다양하다. ‘가지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열 가지 이상 의미용법이 나온다. 그만큼 쓰임새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뜻하는 바를 드러내는 적확한 말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글을 아프게 하는 '가지다'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휴양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우리 언론들은 이를 ‘세기의 담판’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과 무역 불균형 등 현안에 대한 집중 논의를 가졌다.’ ‘두 정상은 전날 만찬을 가진 데 이어 확대 정상회담과 업무 오찬을 가졌다.’

이들 문장에 공통적으로 쓰인 서술어 ‘가지다’는 대표적인 영어말투다. 국어학자들 사이에 이런 지적이 나온 지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기사문장에서는 이 말이 위력을 떨치고 있다. 그만큼 한번 새겨진 글쓰기 습관은 바꾸기 힘들다는 얘기도 된다.

‘하다, 열다, 치르다’ 등 서술어 많아

한경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경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어떤 주체가 ‘(회의/행사 따위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영어의 ‘have’ 동사를 직역한 것이다. 이 경우 우리말법은 ‘열었다’ 쯤인데, 영어에 워낙 익숙해져 있다 보니 ‘가지다’라는 술어를 무심코 많이 쓴다는 게 국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론 영어식 표현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 우리말 체계에 없는 말이라든지 또는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말에 있는 것이라면 굳이 가져다 쓸 이유가 없다. 고릿적부터 써오던 말이 가장 자연스럽고 친숙한, 그럼으로써 소통에 더 효율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표현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것은 세련되지 않다는 뜻이다. 외래어투 표현을 조심하라는 것은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다.

앞에서 예를 든 문장에서도 ‘회담’과 어울리는 우리말 표현은 ‘하다’다. 말로 할 때는 ‘정상회담을 했다’고 하지 ‘가졌다’고 하지 않는다. ‘현안에 대한 집중 논의를 가졌다’ 역시 어색하다. 이는 ‘현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가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다. 만찬이나 오찬도 ‘하는’ 것이지 ‘가지는’ 게 아니다. 잘 들여다보면 매우 어색하다는 게 드러난다.

글쓰기에서 ‘가지다’가 무소불위의 힘을 보이는 까닭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영어의 위력으로 인해 이 말이 우리말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론 보도에서 흔히 보이는 ‘~와 인터뷰를 갖고’ ‘현판식을 가졌다’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 ‘현판식을 열었다’고 하면 그만인데 굳이 ‘가지다’를 쓴다. ‘대담을 가지다’는 ‘대담을 나누다’로 쓰면 된다. 그게 자연스러운 우리 말투다.

의미에 적확한 말을 찾아라

또 하나는 ‘가지다’가 쓰이는 용례가 우리말에서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이다. ‘가지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열 가지 이상 의미용법이 나온다. 그만큼 쓰임새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뜻하는 바를 드러내는 적확한 말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흔히 접하는 다음 같은 문장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간담회를 가지다/개인전을 가지다/기자 회견을 가지다/환경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들은 모두 ‘열다/치르다’로 바꿔 쓸 수 있다. 그것이 적확한 우리말 표현법이다. 말로 할 때는 “아이가 몇 있냐?”라고 묻고 “아이가 몇 있다”고 답한다. 글로 쓸 때는 부지불식간에 ‘자녀를 세 명 이상 가진 사람은…’ 식으로 쓰곤 한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 때문이다.

좋은 글쓰기란 ‘우리말답게’ 쓰는 것이다.

‘우리말답다’는 것은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쓴다는 뜻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따로 훈련받지 않아도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