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여전히 '화이'와 '내화'에 취해 있는 중국, 국제사회 인정 받으려면 보편적 가치 따라야
■ 기억해 주세요^^
마오저둥 혁명으로 3000만명이 굶어죽은 중국은 덩샤오핑이라는 지도자를 거치면서 빈곤에서 탈출하기 시작했어요.

“중국은 자신의 업적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나라였으며, 다른 나라를 경멸하던 나라였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의 습관이 되었으며,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되었다.‘-순원(孫文)

중국의 최근 외교 행태가 주변국들 사이에서 논란을 부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 제국적 행태를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이란 군사력을 동반한 대규모의 압제적 국가를 말한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사람들을 힘을 동원해 하나로 묶은 것이 제국이다. 나라의 힘이 강력해지면, 모든 나라들은 제국의 행동 양식을 보인다. 하지만, 제국은 현대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개인들의 의사를 존중하거나 개인들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베스트팔렌 조약(1648)을 근대 외교의 효시로 본다. 국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상대방 나라를 대등한 상대로 인정한다는 국제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52) 중국 외교의 뿌리
다른 나라를 경멸하던 나라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지금도 자신이 국제사회의 ‘일개국’으로 존재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나라다. 중국 지도부는 아직도 전통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황제는 하늘 그 자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통치자이며(天子), 주변국들을 교육하고 처벌하도록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자’라는 관념 말이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화이(華夷)’와 ‘내화(來華)’다. ‘화이’는 글자 그대로 ‘중국인과 오랑캐’라는 뜻이다. 하늘은 중국인과 야만족들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중국인들이 ‘열등한 존재인 야만족’들을 지배하고 통치해야 마땅하다는 선언이다. ‘내화(來華)’는 ‘중국으로 오라, 와서 중국인이 되라’라고 번역한다. 중국에게 열등한 인간들을 문명화하는 의무와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야만국이며, 따라서 중국적 관점에 의해 특정한 지위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다.

공산화로 아시아 빈국 전락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세계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신했기에, ‘야만인’들을 덕(德)으로 때로는 힘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현대에 발생했다.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중국이 강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1840-1842)에서 영국에게 대패했고 청일전쟁(1894-1895)에서는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를 멸하고 건국한 중화민국도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에서 연이어 일본에게 유린당했다. 사실상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이 유럽과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내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1927년부터 1950년까지는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이 벌어져 전 국토에서 포연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마오저둥(毛澤東)이 주도한 대약진운동(1958-1960년대 초)으로 3000만명 정도의 농민이 아사했으며 중국 공산당이 ‘당, 국가, 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극좌적 오류’라고 평가한 문화혁명(1966-1976) 기간 중에는 300만 당원 숙청, 경제피폐와 사회혼란이 만연했다. 북중 접경지대의 중국인들이 ‘중국보다 잘 사는 북한’을 향해 수시로 몰래 국경을 넘을 정도였다.

도광양회···은밀히 힘을 기름

중국 스스로도 이 기간을 백년국치(百年國恥)라고 평가한다. 문화혁명 기간을 전후해 마오저둥에게 세 번이나 숙청을 당했던 중국의 재건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그래서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름)를 국가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시절에는 ‘중국의 부상은 주변국과의 편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화평굴기(和平起)를 내세웠고,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좌우명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다. 이제 중국에게 주변국을 ‘가르칠’ 힘이 생겼다는 선언이다. 장저민(江澤民) 주석이 1997년 방미 당시 기대했던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하자 기자회견장에서 두보(杜甫)의 시 ‘회당릉절정 일람중산소’(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때가 되면 태산의 정상에 올라 다른 산이 얼마나 작은지 굽어 보리라)을 인용했던 때와는 시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주변국을 가르칠 권리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 중국의 세계관은 오랜 세월을 통해 그들의 정신에 각인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전 근대적 세계관을 벗어버리고, 현대의 관례를 따르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21세기 국제 사회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