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크 포인트

인류는 오랜 기간 금융거래가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인 이자 지급을 억제해 왔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인류는 나름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발휘해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금융거래를 수행하는 방법을 창안해 왔죠.^^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고대 유대인과 로마인은 이자를 철저히 금지했다
살면서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가족이 아프거나 갑작스런 화재 내지 천재지변 등 미처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일련의 일들로 인해 우리는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만을 떠올려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금융기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결조건이 있지만,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적절한 대가가 지급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지급하는 대가는 ‘이자’이다. 이자는 기본적으로 수요 공급의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에서 상품을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변하는 것처럼 이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많으면 이자는 낮아지고, 반대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보다 많으면 이자는 높아진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의외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에게 이자를 통해서 원활히 반대급부가 허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 많은 시대와 국가에서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이자를 엄격히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비도덕적이면서 무가치한 행위로 치부되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을 보면 당시 바빌론 지역에서 다양한 상거래가 융성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관개용수의 사용 규칙, 토지 임대료, 노동자 임금, 중개사업 등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금융 거래를 통해 수취하게 될 이자에 대해서는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은 감옥에 가거나 노예로 파는 것은 허용했어도, 이자 자체는 33.3%를 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였다는 사실이다.

고대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아예 이자를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는 구약성서에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항을 유대인들은 슬기롭게 해석했다. 구약성서 신명기에 나오는 “타인에게 이자를 받을지라도 네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내용을 같은 유대인들끼리가 아닌 외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이후 유대인들은 외국인을 상대로만 제한적으로 금융업을 수행해왔다.

로마 역시 이자는 금지되었다. 기원전 342년 로마는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당시 로마 시민 역시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결국 로마인들은 로마가 지배하는 다른 속국에서 오늘날로 따지면 법의 인가 없이 영업하는 유령회사 격인 금융회사를 차려 금융거래를 해왔다. 하지만 결국에는 로마도 이러한 음성적인 금융거래와 거대 제국을 대상으로 한 상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자 지급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역시 극히 제한된 방식이었다. 기원전 88년 이자는 법적으로 1%만 지급되도록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고대 유대인과 로마인은 이자를 철저히 금지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이자는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슬람에서는 성전 코란을 근간으로 한 ‘샤리아(sharia, 이슬람법 체계)의 원칙’에 따라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에게도 금융기능은 필요했다. 이들이 생각해 낸 대응책은 수쿠크(sukuk)였다. 수쿠크는 투자하여 얻은 수익에 대해 고정된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배당을 받는 형태이다. 따라서 특정 사업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배당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우리 인류는 오랜 기간 금융거래가 발전할 수 있는 원천인 이자 지급을 철저히 억제해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류는 나름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발휘해 자신들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금융거래를 수행하는 방법을 창안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은 금융기능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를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해 주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