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6) 문학청년 신격호와 롯데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 놀이공원 건너편에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시어터가 있다. 이 이름에 담긴 사연이 재미있다. 샤롯데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자 주인공으로, 제과기업 롯데를 설립한 신격호가 상상 속에서 흠모한 여인이었다. 사실은 롯데라는 이름도 샤롯데의 애칭이다.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꿈 찾아 도쿄행…풍선껌·롯데타워 최고 기업 일군 '뚝심의 기업인'
■ 기억해 주세요^^

샤롯데는 괴테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자 주인공 이름으로 신격호가 상상 속에서 흠모한 여인이었죠. 롯데라는 기업 이름도 샤롯데의 애칭이에요.


문학청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인공 샤롯데 흠모

신격호
신격호
신격호는 1921년 경상남도 울주(울산에 편입)에서 태어났다.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생계를 위해 종축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 그 꿈을 이루고자 스무 살에 일본행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쿄에 도착하지만 막막했다. 먼저 건너간 친구의 하숙집에 얹혀살면서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가난한 조선인 청년에게 문학은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신격호는 새벽부터 일해서 번 돈으로 와세다공고 야간 화학부를 다니면서 기술을 배웠다. 그러던 중 평소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하나미스 노인이 사업 기회를 제안해 온다. 6만엔을 투자할 테니 군수용 기름을 만들어 팔자는 것이었다. 신격호는 뜻하지 않게 사업가가 됐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은 막 사업을 시작한 그에게도 치명타를 가했다. 미군의 연이은 공습으로 일본 열도 전역이 초토화되었고 신격호의 작은 작업장도 폭격을 맞았다. 1945년의 일이었다. 얼마 안 있어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전쟁은 끝났다. 신격호는 하나미스 노인에게 투자금을 빚진 신세로 남겨졌다.

“성실한 청년”…하나미스 노인의 제안

해방을 맞은 일본의 조선인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했지만 신격호는 남았다. 빚을 떼어먹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렵사리 다시 공장을 수습한 뒤 이번에는 군수용 기름으로 포마드를 만들어 팔다가 풍선껌 만들어 파는 일에도 나섰다. 위생에 특별히 신경을 쓴 덕분에 잘 팔려나갔다. 사업이 커지면서 아예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때 붙인 이름이 롯데다. 그가 평소 흠모해온 소설 속의 여인 샤롯데의 애칭을 회사 이름으로 택한 것이다.

그의 사업은 껌에서 초콜릿으로 그리고 종합제과업으로 발전해갔다. 신격호는 홍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대 세계 최고 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광고모델로 세우기도 하고, 미스롯데 선발대회도 개최하는 등 파격적인 홍보를 통해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롯데제과는 메이지, 모리나가 등과 더불어 일본 최고의 제과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신격호는 1988년 세계 4위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틈틈이 사 모은 도쿄 변두리의 불모지 땅들이 금싸라기 시가지로 변한 덕분이었다.

1960년대에 기업가로 성공을 거둔 그는 조국인 한국에서도 사업을 펼치고 싶었다. 마침 박정희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끊어진 한·일 간의 외교를 다시 열고 싶어 했다. 신격호는 평소에 쌓아둔 일본 정계 인맥을 동원해 한·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다.

제철소 건립의 숨은 공로자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대규모 제철소 건설을 요청받고 가와사키 제철소 등의 도움을 받아 제반 준비를 하던 중 제철소는 국영기업화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자 모든 자료를 책임자인 박태준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본인은 1967년 제과업으로 조국 진출의 꿈을 이룬다. 당시 한국의 과자 시장은 해태제과, 동양제과 등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롯데제과는 소매점으로의 직배송 방식 등 새로운 방법으로 제과업계 큰손으로 올라선다.

1973년 또다시 박 대통령에게 관광호텔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을지로 입구에 롯데호텔과 쇼핑센터를 짓는다. 롯데의 호텔과 쇼핑센터, 롯데월드, 면세점 등은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낸다. 롯데는 중국과 러시아로도 진출했다.

신격호에게는 평생의 숙원사업이 있었다. 1987년 확보한 잠실 부지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 꿈은 지금 높이 555미터의 롯데월드타워로 모습을 완성해가고 있다. 경영권 승계 문제로 아들들과 불화를 빚고 있지만 신격호는 위대한 인생을 살았다. 가난한 식민지 조선의 농촌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