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기쁨을 나 아닌 남과 나눌 수 있다면 그 누구 못지 않은 행복한 사람
김점선 그림
김점선 그림
시를 읽으면 좋은 가사가 나온다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 시의 특징은 언어를 함축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짧은 언어에 많은 의미를 담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를 ‘문학의 정수’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시는 감성이 살아 움직이는 청춘에 써야한다고들 말한다. 시인들이 다른 장르에 도전하기도 하는데 시를 오래 쓴 작가들의 문장력은 특별한 데가 있다.

예전 학생들이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시를 읊었다면 요즘 친구들은 직접 가사를 써서 랩을 만들고 부른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이어 고등래퍼가 상종가를 치는 중이다. 비트에 맞춰 랩을 할 때 가사에 귀 기울이다가 ‘시를 읽으면 훨씬 좋은 가사를 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52) 장영희·김점선 '생일'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법詩法’에서는 시를 이렇게 표현한다.

‘시는 둥그런 과일처럼/만질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엄지손가락에 닿는 오래된 메달들처럼/딱딱하고/새들의 비상처럼/시는 말을 아껴야 한다./시는 구체적인 것이지/진실된 것이 아니다./슬픔의 긴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사랑을 위해서는/비스듬히 기댄 풀잎들과 바다 위 두 개의 불빛/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단지 존재할 뿐이다.’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52) 장영희·김점선 '생일'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가였던 장영희 선생이 엄선한 시와 단상, 화가 김점선 선생의 밝고 환상적인 그림을 담은 《생일》에서 소개한 시이다.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라는 타이틀로 신문에 연재됐던 시 가운데 49편을 뽑아서 엮은 《생일》은 영어 공부도 하고 시도 읽고 해설도 보고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일석사조의 책이다.

그 자리에서 휘리릭 읽고 던져놓았다가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되고, 한 장씩 아껴가면서 음미할 수도 있는 오묘한 시집이다. 무심코 읊다가 마음이 콕콕 찔린 듯 저리기도 하고, 찌르르한 감동에 마음이 싱숭거려 결국 다시 들게 되는 책이다.

수록된 시 가운데 몇 편을 살펴보자. 엘러 휠러 윌콕스의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라는 시는 ‘오늘 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라며 여러 유형을 나열하다가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라고 노래한다. 나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재산’을 단 네 줄로 표현한다.

장영희
장영희
‘기쁜 마음은 천금과 같고/사랑 담은 눈은 루비와 진주 같은데/게으른 자는 시장에 내오지 못하고/비밀스러운 자라도 금고에 쌓아놓지 못한다.’

장영희 선생은 이 시를 ‘주머니 안에 금은보화가 없어도 마음에 기쁨이,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면, 그 사랑과 기쁨을 남과 나눌 수 있다면, 그 누구 못지않은 재산가’라고 풀이한다.

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로 칼릴 지브란의 ‘당신의 아이들은’을 추천한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있는 것은 아닙니다……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장영희 선생은 이 책을 내고 3년 후인 2009년에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림을 그린 김점선 선생은 장영희 선생보다 한 달 보름 앞서 하늘나라로 갔다. 두 분의 뜨거운 우정을 옆에서 지켜봤던지라 지병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신 그 봄날에 많이 울적했었다.

이근미 < 소설가 >
이근미 < 소설가 >
《생일》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새러 티즈데일의 ‘기도’는 ‘나 죽어갈 때 말해주소서/채찍처럼 살 속을 파고들어도/나 휘날리는 눈 사랑했다고/모든 아름다운 걸 사랑했노라고……’로 시작한다. 장영희 선생의 해설은 ‘어영부영 살아가다가 정작 떠나야 할 날이 올 때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떠난다는 회한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면 어떡하지요?’로 끝난다. 두 분은 결코 어영부영하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고 아름답게 살다 가셨다. 아름다운 글과 눈부신 그림을 감상하며 시와 삶을 생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