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포인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아베 일본 총리는 실리외교로 일본 기업의 미국 내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아베, 미-일 첫 정상회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조공외교’란 비판 속에도 양국 간 첫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 기업의 미국 내 입지를 다졌다. 안보·경제동맹을 재확인하면서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로 1조달러(약 115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미국 내 인프라 수주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일 간 경제대화를 신설하기로 한 가운데 향후 양자협상에서 무역 불균형, 환율 문제로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뉴스 인 월드] 무역적자·방위비 언급안한 트럼프…아베 총리의 실리외교 통했다
4500억 달러 규모의 아베 선물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미·일 경제대화 신설 등을 포함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대표로 참여하는 경제대화에서는 미·일 간 재정·금융정책과 무역·투자 등을 폭넓게 논의한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 전 미국 내 70만개 일자리 창출과 4500억달러(약 511조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을 골자로 하는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를 준비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는 데 따른 부담 탓에 공식 발표는 뒤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들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베 총리의 ‘트럼프 환심 사기’를 지원했다. 소프트뱅크를 비롯해 도요타자동차, 샤프 등은 수십억~수백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을 잇따라 내놨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며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자기부상 열차기술로 워싱턴DC에서 트럼프타워가 있는 뉴욕까지 한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며 “일본의 첨단기술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댈러스~휴스턴 노선과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고속철도 건설에 신칸센이 채택될 수 있도록 에둘러 협조를 요청한 셈이다.

상호이익이 걸린 민감한 경제 문제를 놓고 두 정상이 충돌하지 않자 일본 기업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트럼프노믹스(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수주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조기에 양국 정상이 회담하고 관계를 깊게 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NHK는 엔저(低) 현상이나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등에 대한 미국 측의 직접적인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미·일 경제대화 신설하기로 합의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일 간 안보동맹을 다시 한번 확인한 점도 일본으로선 큰 성과다. 공동성명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국의 방위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전보장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일본이 우려한 미군 주둔 경비 증액 요구는 없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안보 면에서 공동성명 내용은 120점”이라고 평가했다.

껄끄러운 경제 현안이 양자 경제대화로 넘겨졌다는 점에서 마찰의 불씨는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에 도움이 되는 공정한 무역관계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는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환율·자동차 분야를 겨냥한 일본 압박의 신호탄이란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689억달러에 달했다. 독일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평가절하와 관련해 “내가 그동안 계속 불평해왔는데 우리는 결국 아마도 공평한 운동장(경쟁의 장)에 있게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환율조작 시정이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을 타깃으로 했지만 아베 총리 취임 이후 대규모 양적완화로 엔저를 유도해온 일본으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도쿄=서정환 / 워싱턴=박수진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