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흥국들, 좌파·우파 정권 관계없이 잇따라 추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각국이 노동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경기 진작을 위해 내놓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신흥국들은 유연한 고용여건을 조성해 해외 투자 유치를 촉진하는 방편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 개혁을 해야 중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이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뉴스] "경제 살리자"…전 세계로 확산되는 노동개혁
프랑스, 노동시장 연장 법안 통과

지난 7월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는 노동시간 연장과 쉬운 해고를 골자로 한 노동개혁안을 직권으로 통과시켰다. 프랑스 헌법 49조3항에 규정된 ‘긴급 명령권’을 이용해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해당 법안을 발효시킨 것이다. 경제 침체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프랑스의 지난 3분기 실업률은 10.0%였으며, 청년(15~24세) 실업률은 25.1%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동개혁안에는 현행 35시간인 주당 노동시간을 추가로 46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게 하고, 기업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초과근무 수당도 25%를 추가로 지급하는 것에서 10% 이상만 추가 지급하면 되는 것으로 줄였다. 기업들은 노동시간 연장과 비용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프랑스의 주당 노동시간은 유럽연합(EU) 총 28개국 평균치인 39.6시간에 못 미치는 37.9시간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노동개혁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는 말 그대로 엉망이다. 2012~2014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탈리아의 지난 10월 실업률은 11.6%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실업률 평균인 9.8%보다 놓다. 청년 실업률은 37%까지 치고 올라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나기로 한 것도 침체된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도 합류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노동개혁 대열에 합류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14년 집권과 동시에 노동개혁을 핵심 정책 아젠다로 내세웠다. 해외 기업의 자국 투자를 유도하고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대에 불과한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현행 인도 산업관계법에 따르면 100명 이상 고용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해고하기 위해선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업관계법 수정안은 규제 대상 기준을 100명 이상에서 300명 이상 기업으로 상향하고,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9월 노동개혁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의회에 상정됐다.

중국 정부도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노동개혁에 나섰다. 제조업 공급 과잉에 따른 경기 둔화와 동남아시아로의 공장 이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는 올 들어 양로·실업보험에 대한 기업 부담률을 1%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 중국 정부가 정년이 보장된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최대 두 배에 달하는 경제보상금(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신노동계약법 개정 작업을 준비 중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업들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원활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1943년 제정돼 80여년 묵은 노동법 개혁안을 내년에 의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기존 노동법에 따르면 성과연봉제와 경영 위기 시 임금·노동시간 조정은 금지돼 있다. 이 같은 조항을 수정·폐지하겠다는 게 테메르 정부 입장이다.

노동개혁 밀어붙이는 좌파정권들·

흥미로운 점은 각국의 집권당이 좌파, 우파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안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프랑스 사회당은 노동자 권리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온 대표적인 좌파 정당이다. 올랑드 대통령과 사회당이 노동개혁에 적극적인 이유는 두 자릿수 실업률과 경기 침체로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부패와 연루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중도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테메르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다. 그는 노동개혁을 포함해 고강도 긴축 정책과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헌법에 ‘인도는 사회주의 공화국이다’는 문구를 넣을 정도로 노동자 보호를 원칙으로 해왔다. 그러나 모디 총리는 “무려 41개에 이르는 노동법의 복잡함과 엄격한 규제로는 되레 수백만에 이르는 실업자를 구제할 수 없다”며 노동개혁을 강행했다.

홍윤정 / 박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