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약, 무엇이 문제일까?
미국 '세계의 경찰'에서 '세계의 골칫거리' 될 수도
[Cover Story] 트럼프 "안보동맹과 자유무역으로 미국만 희생"
미국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70)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미 공화당 대통령 선거(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돼 오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양자 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를 이끄는 ‘리더 국가’인 미국의 대선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올해 미 대선에 특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전통과는 반하는 정책을 대거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때문이다. 한낱 ‘문제아’로 치부되던 트럼프가 만에 하나 당선돼 공약대로 정책을 밀어붙이면 세계의 질서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무엇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고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정치·외교적 고립주의

트럼프의 공약은 △외교적으론 다른 나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고립주의 △경제적으론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보호주의 △반이민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기 나라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미국 우선주의다. 이런 공약은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 자유무역과 안보동맹을 양대 축으로 미국이 구축한 전후 질서의 거부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전 세계 경찰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이 봉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2차 대전 후 동맹국의 안보를 돕는 대가로 세계 질서를 이끌어왔다. “미국이 봉이 되고 있다”는 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국제 안보·경제 질서를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국가 안보에 너무 많은 것을 ‘퍼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대표적이다.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론’이다. 동맹 대신 돈으로 따지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주한미군 주둔에 드는 비용의 절반가량인 1조원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는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을 줄이는 한편 한·일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비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국가 안보의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트럼프의 눈에는 전통적인 우방인 서유럽도 고깝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미국이 너무 많은 분담금을 내는 게 불만이다. 그는 미국의 비용과 역할을 줄이는 나토 개혁, 더 나아가 나토 해체까지 언급했다.

경제는 보호주의…“중국에 관세 폭탄을”
[Cover Story] 트럼프 "안보동맹과 자유무역으로 미국만 희생"
트럼프는 지난 6일 오리건주 유진을 찾아 “미국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외지인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여러 주가) 몰살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2차 대전 후 세계의 번영을 이끌어온 자유무역을 반대한다. 자유무역으로 미국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한 NAFTA 재협상, 태평양 연안 12개국이 합의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를 외친다. 틈날 때마다 값싼 중국산 제품 때문에 미국의 제조업이 무너졌다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폭탄 관세 부과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경제학자 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또 6일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부채의 왕”이라며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빚을 더 낼 것이고, 낮은 금리로 장기 차입하기 위한 채무재조정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랏빚을 안 갚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어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선 “미국 정부의 빚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갚으면 된다”고 경악할 만한 발언을 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어 정부 빚을 갚으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국부채를 갚기 위해 미 중앙은행(Fed)이 달러를 찍어내면 달러화는 휴지 조각이 된다.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시장을 무너뜨리고 세계 경제를 파탄에 빠뜨릴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무슬림 절대 안 돼”…인종차별과 배타주의

트럼프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가 미국 경제를 위협한다고 본다. 그래서 멕시코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겠다고 했다.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가 국경을 맞댄 지역에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장벽을 쌓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에 들어와 있는 불법 이민자 1100만명을 즉시 추방하고 부모가 불법 이민자라도 미국 땅에서 태어난 경우 시민권을 주는 제도도 없애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피즘’ 현상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

‘트럼피즘(Trumpism)’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트럼프가 부상하면서 위기감이 팽배하다. 트럼프의 인신공격과 흑색선전, 그리고 분노를 유발하는 선거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드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미 대선에서 정책 대결은 사라졌다. 트럼피즘은 트럼프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기행에 가까운 행동 양식이 대중의 선호를 받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트럼프의 부상은 경제적 좌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실종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통탄했다.

1920년대 이탈리아 국민이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선택하고, 1930년대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총리로 뽑은 것은 먹고사는 게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세계대전과 인간성의 말살이었다. 그때처럼 요즘도 양극화와 실업 등 현실에 대한 분노로 불타는 민심이 역주행하면서 그 분노에 기름을 붓는 막말 정치인이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와 극단주의자들의 부상은 민주주의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며, 부단한 노력과 양식 있는 시민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먼로주의는 美 고립외교의 시초

‘고립주의’가 과거에도 미국의 외교원칙이었던 때가 있었다. ‘먼로주의(Monroe Doctrine)’가 바로 그것이다. 제임스 먼로는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이름이다. 먼로는 1823년 12월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유럽의 미국 대륙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미국의 유럽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 건설 배격의 원칙 등 3개 원칙을 분명히 했다.

먼로는 당시 연두교서에서 “아메리카 대륙은 금후 유럽 강국에 의한 장래의 식민의 대상이 아니다. 유럽 자체에 관련된 문제로 유럽 강국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우리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거니와 그렇게 편든다는 것이 우리의 정책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 여러 나라가) 그들의 체제를 이 반구의 어떤 부분으로든 확장하려는 여하한 시도도 우리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유럽 일에 간섭하지 않겠으니 유럽도 미국을 포함한 아메리카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아메리카에 더 이상 식민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에 “아메리카인을 위해 아메리카를 떠나라”는 경고였다. 이런 의미에서 먼로주의는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고립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 강국의 힘에 밀린 세계 정치 지형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만이라도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적극적 행보였던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