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투표의 역설…다수결도 허점은 있다
투표는 유권자의 의사를 묻는 절차다. 조직이나 단체도 투표로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투표는 ‘다수결 원리’가 골자다. 투표와 다수결은 민주주의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국가통치권자나 국회의원을 뽑는 핵심 수단이다. 한데 투표나 다수결에도 나름 허점이 있다. 플라톤이 고대 그리스 민주제를 ‘중우(衆愚)정치’라고 꼬집는 것은 투표로 나타난 민의(民意)에 왜곡이 많다는 뜻이다. 다수결 선거제도는 민주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완벽한 수단만은 아니다.

사익에 집착…‘중우(衆愚)’라는 함정

플라톤(BC 427~BC 347년)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철학자다. 현대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위대한 철학자다. 그의 이데아론과 국가론은 고대 서양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한데 그런 그가 그리스 민주제를 중우정치(mobocracy)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대중의 어리석음, 즉 ‘중우(衆愚)'를 민주주의 맹점으로 지목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제가 통치자나 유권자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는 체제적 수단으로 타락하면서 민주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제는 ‘민주제의 꽃’으로도 불린다. 모든 시민이 직접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언뜻 이상향으로도 보인다. 한데 당시 아테네에서 지배계층이던 시민들은 국가라는 대의(大義)적 공익보다 개인이라는 소의(小義)적 사익을 좇았다.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 타락에 실망했고 <<국가론>>에서 현인이 직접 통치를 해야 한다는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했다. 플라톤이 2400년 전에 우려한 ‘중우’는 오늘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과 의미가 비슷하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사익을 자극하고 유권자들이 사익만을 좇아 투표하면 민주주의는 타락한다.

투표의 역설…다수결이 최선일까?

어느 지역구의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가 3명이라고 가정하자. A가 40%, B가 35%, C가 25%를 득표했다면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 A가 당선되는 건 문제가 없어보인다. 한데 사전 일대일 여론조사에서 B와 C가 모두 A를 꺾는 결과가 나왔다면 어떨까. 이는 B와 C를 지지한 유권자는 모두 A를 싫어하는데 A, B, C가 모두 후보로 나옴으로써 표가 B, C로 분산되고 결과적으로 A가 어부지리로 당선된 셈이다.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싫어하는 사람이 거꾸로 당선이 되면 유권자들의 불만은 커지게 된다. B와 C가 단일화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만 이 또한 간단치 않다. B와 C의 지지도에선 B가 앞서지만 A와의 대결에선 C가 우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인 콩도르세의 ‘투표의 역설(콩드르세의 역설)’은 다수결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준다. A, B, C 세 후보 사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3분의1은 A>B>C 순으로 후보를 선호하고, 다른 3분의1은 B>C>A 순으로, 나머지 3분의1은 C>A>B 순으로 후보를 선호했다고 하자. 이 경우 A와 B의 대결에선 A과 과반 득표를 하고, B대 C의 대결에선 B가 과반 득표를 한다. 그럼 A와 C의 대결은 어떻게 될까. A>B이고, B>C이니 당연히 A>C일 듯하다. 하지만 최다 득표제에서는 이같은 선호 이행성(일관성)에 위배되는 C>A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다수결에도 큰 함정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중간의 선택…중위투표자정리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는 다수결 투표제(과반수제)에선 중간의 선호를 가진 중위의 대안이 주로 선택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현대 공공선택이론에 크게 기여한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던캔 블랙은 “정당의 목적은 득표의 극대화를 통한 집권이며 이를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설정을 ‘중간쯤’에 놓은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정당은 중위적 정책을 선호하는 유권자 심리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국방비 지출’이 이슈라고 하자. 이 경우 극단적으로 국방비를 한푼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현재보다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유권자는 ‘적당한 증액’이라는 중간적 입장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정당들도 당의 이념이나 정체성보다 유권자 선호에 맞춘 정책을 내놓는다. 표가 이념보다 우선인 셈이다. 민주주의 다수결은 의사결정의 효율적 수단이다. 한데 다수결도 허점이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다수결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시민과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

■ 여론조사 제대로 이해하기…신뢰수준 95%, 오차 ±3.5%포인트?

여론은 민심을 읽는 척도다. 특히 민주주의 선거에서 여론은 후보 선출에서 당선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후보자들이 여론조사에 울고웃는 이유다. 그만큼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조사기관에 따르면 이달 21~2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갑 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은 40%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신뢰수준 95%, 표본오차는 ±3.5%포인트다.” 선거 때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한데 이 여론조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위 여론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이라는 표본이 모집단(전체 성인)을 잘 대표한다는 가정하에 실시된 것이다. 하지만 표본이 모집단을 100%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차가 생긴다. 따라서 여론의 결과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것이 신뢰수준과 표본오차다. 신뢰수준 95%라함은 여론조사를 95% 믿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같은 조사를 100번하면 오차범위내 동일한 결과가 나올 횟수가 95번이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5% 확률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원리로 100명의 표본을 추출해 모수를 추정하고, 다시 새로운 100명의 표본을 추출해 모수를 추정하면 두 개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집단의 모수와 표본의 추정결과(통계량)의 차이가 표본오차다. 표본오차가 작을수록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이를 위해선 추출 표본 수를 늘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위 여론조사는 전체 유권자 중 2000명을 샘플로 뽑아 여론 통계를 100번 집계했을 경우 갑 후보자 지지율이 36.5~43.5%가 나올 확률이 95번이라는 얘기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