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1400명 MRI로 분석
성별 치우친 뇌 8% 불과

공간인지·수학실력 등 남녀 뇌기능 차이 없어
[포커스] '화성남-금성녀' 차이, 뇌구조 때문? 성별보다 교육·환경이 더 큰 영향!
미국 심리학자인 존 그레이 박사는 자신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와 여자는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뇌의 인지 구조가 근본적으로 서로 달라 사고방식에 차이가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근거해 흔히 남성의 뇌는 돈을 벌기에 익숙한 사고 구조를,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말이 있다. 과연 이런 속설은 맞는 것일까.

성별 치우친 뇌영역 발달은 8%

이전까지는 태아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 남성적인 뇌로 성장하면서 남녀 간 뇌 차이가 발생한다는 이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대프너 조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 연구진은 남성과 여성의 뇌를 비교한 실험에서 남녀 간 뇌 구조에 성 차이는 없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지난달 30일자에 발표했다. 대부분 사람은 남성과 여성의 사고 구조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13~85세 남녀 1400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두뇌 영역의 크기를 측정하고 성별에 따라 주로 발달하는 부위를 구분했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주로 나타나는 특성에 따라 남성 영역과 여성 영역, 중간 영역으로 나눴다. 분석 결과 남성과 여성은 뇌의 161개 영역 가운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을 관할하는 하측 전두회를 포함해 29개 뇌 영역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하지만 자신의 성별에 치우친 뇌 영역이 발달한 사람은 고작 8%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별뿐 아니라 반대 성별에서 발달하는 영역이 발달한 경우가 많았다. 조엘 교수는 “대부분 사람은 성별에 상관없이 두뇌가 중간적인 성질을 지닌다”고 말했다.

공간 인지능력도 남녀 차이 없어

이번 연구는 남녀 간 뇌의 구조적 차이에만 초점을 뒀다. 하지만 그동안 지나치게 성별에 근거해 뇌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다른 뇌 연구에서도 남녀 간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운전을 잘 하거나 길을 잘 찾는다는 속설도 그중 하나다. 남녀 간 공간 지각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영국 더럼대 연구진은 남녀 간 공간 인지 능력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성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커스 하우스만 더럼대 교수는 “일부 공간 지각 능력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며 “뇌 구조와 기능에서 남녀 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다. 마거릿 매커티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는 “이런 주장은 문화적 인식을 넘어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며 “남녀 간 성별에 따라 선입견을 가지고 능력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별 중시 풍토 벗어나야

이에 대한 일부 반론도 있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남녀 간 차이가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2013년 20~30대 남녀 1000명의 뇌를 촬영한 결과 남성은 두뇌 반구 안에서 신경신호가 활발하게 오고가는 데 반해 여성은 두뇌 반구 간에 신호전달이 더 활발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남성의 뇌가 운동능력에 더 적합하게 발달해 있고 여성의 뇌는 분석적이고 직관적인 일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알렉산드라 카우츠키 뮐러 오스트리아 빈 의대 교수는 “대규모 집단에서 진단과 치료를 해야 할 경우 남녀 간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같은 성별 내에서 더 복잡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별만을 고려할 게 아니라 문화와 환경, 교육, 사회적 위치에 따른 뇌 기능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태 한국경제신문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