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에 '위대한 탈출' 저자 앵거스 디턴 교수
작년 9월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한 앵거스 디턴 교수. 한경 DB
작년 9월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한 앵거스 디턴 교수. 한경 DB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경제성장의 힘’을 집중 조명해 온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자본주의와 성장이 인류를 어떻게 궁핍에서 벗어나게 했는가를 역설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한국경제신문 펴냄)’의 저자로 유명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 “소비와 빈곤, 그리고 복지 분석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디턴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디턴은 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을 통해 그 어떤 시대보다 불평등을 줄이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21세기 자본’에서 “세습된 부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한 것과 정반대다. 이보다 앞서 2013년 디턴 교수가 내놓은 ‘위대한 탈출’은 불평등이야 말로 성장을 촉발했으며 세상은 역설적으로 평등해졌다고 설득력있게 입증했다.

소득 늘면 수명도 늘어

[포커스] 앵거스 디턴 교수 "일시적 불평등 대가로 중국·인도 수십억명 빈곤 탈출"
디턴 교수가 2013년 내놓은 책 ‘위대한 탈출’의 원제는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이다.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번역된 책이다. 주류 경제학자로서 그는 물질적 풍요와 삶의 만족도, 즉 건강의 상관관계에 집중했다. 2008~2009년 미국인 45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일정 소득 이상에선 행복감에 차이가 없었다. 소위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하지만 본론은 국가들의 성장단계를 분석한 데서 나왔다. 국가별 소득을 절대액이 아닌 증가율로 분석해보니(로그분석) 소득과 수명이 거의 정확히 정비례(그림 1)한 것이다. 삶의 만족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과 인도에선 경제성장에 따라 영아사망률이 뚜렷하게 하락했다(그림2).

경제성장의 결과 지구촌 전체가 이전보다 고루 평등해졌다는 증거였다. 1950년대 북유럽과 아프리카의 기대수명 격차는 31.9세였다. 2010년엔 26.5세로 줄어들었다. 신흥국의 약진이 빈곤을 감소시킨 것이다.

중국 인도 불평등 대가로 발전

디턴 역시 성장이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데엔 동의했다. 하지만 이는 성장과 발전의 부산물이라고 디턴은 생각했다. 인류 전체로 보면 이 과정이 더욱 두드러진다. 디턴은 일시적인 불평등의 대가로 중국과 인도의 수십억명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UN의 새천년개발목표(MDGs) 등을 종합해보면 1990년 19억~20억명(세계인구 43%)에 달했던 절대빈곤층(하루 1달러 미만 생활자 기준)이 20년 만에 12억~13억명(하루 1.25달러 미만 생활자 기준)으로 줄었다.
[포커스] 앵거스 디턴 교수 "일시적 불평등 대가로 중국·인도 수십억명 빈곤 탈출"
“성장의 힘을 믿으라”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 도입으로 인류가 유사 이래 처음 ‘평평한 지대’에 들어섰다고 강조했다. 지구 전체로는 10년마다 인간 수명이 2~3년씩 늘어나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의 저서 제목 ‘위대한 탈출’도 성장을 통해 인류가 궁핍과 죽음으로부터 비로소 대탈출을 이뤄냈다는 의미다. 그는 “평균 기대수명의 비약적 증가는 역설적으로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증가할 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내는 불평등의 힘. 이 본질을 이해해야 현실을 개선하고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이때 불평등은 ‘좋은 불평등’이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보다 단순한 예를 꺼내기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있을 때 한 동료가 26세에 교수가 돼 질투가 났어요. 하지만 2년 안에 따라잡았습니다.”

앞선 교육과 혁신의 힘으로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은 그에게 중요한 사례다. 한국인이 더 이상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성장의 힘을 믿으라. 빈곤과 불평등을 평생 연구한 노장 경제학자의 결론이다.

■피케티냐 디턴이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70)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불평등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 ‘제2막’이 올랐다. 1차 논쟁은 지난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이 촉발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불평등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피케티의 시각은 ‘피케티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반면 디턴 교수가 2013년에 내놓은 책 ‘위대한 탈출’(한국경제신문 펴냄)은 불평등이야말로 성장의 또 다른 기회라고 역설했다. 이후 ‘위대한 탈출’은 자본주의, 빈곤, 불평등의 본질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핵심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은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300여년간의 방대한 수치를 분석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낮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다. 성장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잘살기보다는 일부 부자들만 더욱 잘살게 된다는 결론이었다.

미시경제학의 석학인 디턴 교수 역시 각국의 다양한 통계를 활용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디턴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소비 자료 등을 활용해 빈곤을 측정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실증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라며 “그 결과 성장이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유력한 수단임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내에도 발간된 ‘위대한 탈출’은 노학자의 그 성과를 그대로 담은 저서다.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가 완벽하진 않지만 인류가 찾아낸 가장 유력한 빈곤 탈출법이라고 생각했다. 성장 과정에서 불평등이 일어나지만 이는 ‘필요악’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빈곤에서 탈출하거나 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교육과 혁신, 경쟁의 힘으로 새로운 자산가들이 생겨난다.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해법 또한 두 사람은 달랐다. 피케티 교수는 상위층에 편중된 자본을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다. 자본 과세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반면 디턴 교수는 빈곤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나라들에 초점을 맞췄다. 서구 국가들의 원조는 빈곤국의 성장 의지를 꺾는다. 빈곤국이 의료기술과 교육 등을 기반으로 스스로 성장하게끔 정책적으로 지원하자고 디턴은 주장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