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6)
[직업과 경제] 제품의 작명가, 네이미스트와 지식재산권
우리는 신문 지면상에서 인수합병(M&A) 관련 기사를 통해 특정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얼마의 인수 금액을 지급했다는 등의 기사들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사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수대상 기업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해당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 기계, 공장 등과 같은 실물자산 가치보다 해당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 상표 등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여 인수 금액이 결정되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사실 재산권에는 실체를 가지는 유형의 재산권과 그 실체를 만질 수 없는(intangible) 무형의 재산권이 있다. 이 중에서 유형자산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재산적 가치를 부여했던 대상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동산, 현금, 유가증권 등과 같은 것이 유형자산에 해당한다. 반면 무형의 재산권에는 광산을 채광할 수 있는 광업권이나 어업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어업권과 같은 영업권 그리고 사람의 지식 창작의 결과물인 저작권이나 산업재산권과 같은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이 해당한다. 이 중 지식재산권이란 산업, 과학, 문화, 예술 분야 등 인간의 지적활동의 결과 얻어지는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최근 국제적으로 지적 활동 결과물인 지식재산권이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미국 OCEANTOMO社에 따르면 미 500대 상장기업의 시장가치에서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30% 수준에 불과하였으나 최근 84%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지식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KBC(Knowledge Based Capital)가 향후 OECD 국가들의 성장과 투자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각 국가 및 기업들의 경제 활동 결과물은 지식재산권으로 귀결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지식재산권은 사실 그 성격에 따라 다시 세부적으로 다양한 권리로 구분되어 관리되고 있다. 가장 큰 분류 기준으로는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재산권(Industrial Property Right), 문화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저작권(Copyright)과 최근 들어 새로이 지식재산권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신지식재산권(New Intellectual Property Right)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은 다시 특허권, 실용신안권, 상표권 및 디자인권과 문학, 예술 및 컴퓨터프로그램 등을 포함하는 저작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의 지식재산권은 창작자의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창작자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식재산권은 단순히 배타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보다 많은 발명과 창작활동을 장려하여 기술 또는 문예의 발달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임과 동시에 발명자 또는 창작가의 창의적인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처럼 지식재산권이 발달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신종 직업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네이미스트이다. 네이미스트는 말 그대로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특정 제품 내지 서비스의 이름을 결정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네이미스트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그 어느 엔지니어 못지않다. 올초 영국 브랜드 파이낸스에서는 글로벌 500대 브랜드 순위를 발표한 바 있다. 이때 1위는 미국의 애플(APPLE)社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1위를 차지하였다.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한화 144조5000억원에 달하였다. 그 뒤를 이어 2위가 삼성, 3위가 구글, 4위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였다. 중국의 신규 브랜드 가치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IT 기업 중 가장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한 기업은 텐센트로 확인되었다. 텐센트의 브랜드 가치는 2770억위안(약 323조4000억원)으로 집계되었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쇼핑몰 타오바오는 2660억위안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굳이 이상에서 열거한 세계적인 브랜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수행하는 수많은 소비 활동은 상표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특정 제품을 해당 상품의 상표 내지 브랜드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처음 보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해당 제품의 상표만을 믿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상표는 우리에게 얼마만큼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상표가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추가 요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네이미스트가 창출하는 부가가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미스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증이나 전공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정상급 네이미스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경영학적 지식은 기본이고 언어를 비롯한 문화, 사회, 정치 등 다방면의 풍부한 지식을 요구한다.

이는 네이미스트가 특정 제품의 이름을 정할 때 단순히 부르기 쉽고, 편한 내용만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미스트들은 해당 제품에 투영하고 싶은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계층을 주로 공략할 것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제품의 이름을 결정한다. 이러한 이유로 네이미스트가 제품 브랜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장조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네이미스트는 상표 관련 법률지식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애써 지은 상표가 다른 사람의 상표권을 침해하거나 혹은 해외 시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상표일 경우 추후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언어 감각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특정 브랜드가 해외 진출 과정에서 전혀 다른 브랜드 명을 사용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해당 브랜드 발음이 진출한 지역의 비속어 내지 부정적인 의미 언어와 유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당 브랜드는 코카콜라 내지 나이키와 같이 세계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인식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은 GDP 대비 지식재산권 출원 건수로는 세계 1위에 해당하는 국가이며, 인구 100만명당 특허 출원 건수 역시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식재산 분야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많은 브랜드가 창출되길 기대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