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8) 공공정책과 다수결 의사결정 방식의 함정

정치인 중위표심(中位票心) 얻기 공약
선거 후 과도한 비용 지출 우려
'승자의 저주' 될 가능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중간이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이 말은 버스 뒤쪽에 탄 승객을 위한 말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두고 한 말이다. 정치인만큼 ‘중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연두교서를 통해 ‘중산층’에 대한 사랑을 수차례 언급했다. 자신의 표밭인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중산층 사랑을 강조한 것은 다분히 선거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중간으로의 클릭’은 바로 정치인들의 사익추구 전형이다.
'51% 마음' 얻으면 되는 과반투표제…'비동의자 재산권 보호장치' 필요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은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을 통해 소비자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도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배분이 가능해진다. 이와 비슷하게 정당들도 정치시장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 과정을 통해 뽑힌 정치인들이 마련한 공공정책이 오히려 사회의 행복 증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승자의 저주’처럼 말이다.

2012년 19대 총선 전의 정치 상황은 새누리당(전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과반수의 다수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야당의 단골 메뉴인 과감한 복지정책에 뒤지지 않는 ‘좌(左)클릭’ 정강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중위투표자들의 표심은 물론 정치 성향이 왼쪽에 가까운 유권자까지 끌어안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영유아 보육 지원과 누리과정,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정책의 확대로 중위표심(中位票心)을 확보해 51.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최근 급속하게 증가하는 복지재정 부담으로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

'51% 마음' 얻으면 되는 과반투표제…'비동의자 재산권 보호장치' 필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 국가에서는 다수결 투표원칙의 의사결정 방식을 따르고 있다. 대부분 과반수 투표제를 사용한다. 따라서 과반수 투표제도를 이용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은 전체 유권자 중 ‘51%의 마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모든 투표자를 한 줄로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선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선거에서는 전체가 아닌 투표한 사람들로부터 과반수의 표를 얻으면 승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이른바 중위투표자에 관한 정보를 통해 과반수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대부분 공공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중위투표자의 선호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표적 공공정책인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예로 들 수 있다. 국민연금은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원을 제외한 전 국민 대상의 공적 연금이다. 국민건강보험도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 지출은 정부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연금 급여 재원의 원천이 되는 과세 기반에 비해 수급자 1인당 실질급여액이 늘어난다는 것이다(그림 참고). 국민연금 급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퇴직노령연금 수급자는 증가하는 데 비해 청장년 근로세대는 감소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도 이 같은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정책으로서의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은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의 의사가 투영돼야 한다. 과반수 투표제 아래 대표적 일반 국민인 중위투표자의 생애예산 제약과 선호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위투표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라면 자신의 생애 행복을 증진하는 최적의 국민연금 및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와 급여 수준이 있을 것이다. 정책 결정자는 이를 파악해 국민연금 및 국민건강보험과 관련된 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중위투표자의 의사를 반영한 적정 보험료와 급여 수준인가. 과거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이 만들어질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에는 급속한 고령화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위연령은 1988년 26세에서 2014년 40세로 무려 14년이나 높아졌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하면서 공적 연금과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정치인들도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활용한다. 기초연금 도입과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지속적 확대가 그 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연금 수급이 많아질수록 노후 건강관리에 사용할 재원이 늘어나고,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확대로 더욱 오래 살게 되면 연금을 받는 시기도 늘어난다.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의 상보적(相補的) 관계가 국가 재정건전성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2005년에서 2013년 사이 국민연금 지출은 244%, 국민건강보험 지출은 11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정부 지출 66.5%보다 크게 늘었다. 이런 지출이 정부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에서 15.8%로 높아졌고 그 증가 속도는 더욱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위투표자의 나이가 올라간다는 것은 이들의 은퇴 시기가 보다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연금 수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소득에서 보험료 지출의 과다한 증가는 현재의 소비 수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위투표자의 선호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최근 정치권의 과도한 복지정책 경쟁으로 정부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복지정책의 확대를 원할 것인가 아니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여길 것인가. 문제는 정치적 명분과 선동은 중위투표자의 선호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편향된 지식에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 의사결정 방식은 불가피하다. 다수결 의사결정 방식은 집합적 의사결정 비용을 최소화해 신속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차선책이다. 그러나 집합적 의사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유권자들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external cost)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공공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많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유권자들의 선호가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소수 유권자의 재산권이 보장돼 다수의 폭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영신 <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