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내년 나라예산 387조원…급증하는 나라빚에 재정 빨간불
정부는 8일 국무회의를 열어 ‘2016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내년 예산안 규모는 올해보다 3.0% 늘어난 386조7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화 융성, 복지 등 10개 분야의 예산을 늘렸다.

정부는 내년 재정지출을 3.0% 늘리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나랏빚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고해성사를 했다. 내년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기는 데 대해 고개를 숙였다. 한국이 처한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국가채무 수준을 넘었다는 게 예산당국의 판단이다. 천문학적인 복지 지출과 통일 비용을 감안하면 재정여력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재정수지 37조원 적자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국가채무는 645조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50조1000억원 증가한다. 국세 수입이 부진해 재정지출을 3.0%(11조3000억원) 늘리기 위해 이만큼 국가빚을 지는 것이다. 적자국채만 40조1000억원을 발행할 계획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포함한 총지출 증가율이 8.1%에 달해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사상 최대인 올해(42조5000억원) 못지않은 규모다. 재정건전성 지표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33조4000억원(GDP 대비 -2.1%)에서 내년 37조원(-2.3%)으로 불어난다. 국세수입과 경제성장률 전망이 현실적으로 조정된 점도 국가빚이 늘어난 요인이다. 내년 국세수입은 223조1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수입(221조1000억원)과 큰 차이가 없다. 균형 재정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국세 전망을 부풀렸던 것을 정상화하는 차원이다. 국세수입 전망의 근거가 되는 내년 실질성장률도 3.5%에서 3.3%로 조정했다.

‘슈퍼예산’ 편성 쉽지 않아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심상치 않다.

국가채무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1.2%) 처음으로 30%대를 넘어선 뒤 2012년(32.2%)까지 30%대 초반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34.3%, 2014년 35.9%로 높아진 뒤 올해는 38.5%, 내년에는 40.1%로 사상 처음 40%대로 치솟게 된다. 정부는 ‘2015~2019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이 비율이 2017년 41.0%, 2018년 41.1%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 40% 수준은 독일(78.7%), 미국(111.4%), 프랑스(121.9%), 일본(229.2%)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선 양호하다. 하지만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한국은 국민연금 등 연금제도가 덜 성숙한 데 따라 발생하는 충당비용과 천문학적인 자금 소요가 예상되는 통일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연금비용과 통일비용이 각각 GDP의 10%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만큼 국가빚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국가채무 40%는 국제사회의 권고 기준이자 재정건전성 기준점인 국가채무 60%와 같다는 얘기다. 유럽연합(EU)과 유로화 탄생의 초석이 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서 EU 가입을 위한 국가채무 기준이 GDP의 60% 수준이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재정 확대를 지속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았지만 재정건전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펴기 위한 ‘슈퍼예산’ 편성은 쉽지 않게 됐다. 기재부는 2015~2019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2.6%로 잡았다. 지난 10년 동안 총지출 증가율이 가장 낮았던 2010년(2.9%)을 밑도는 수준이다. 한 해 전 ‘2014~2018년 재정운용계획’에서 밝혔던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4.5%)을 대폭 낮춘 것이다.

■예산 관련 용어

추가경정예산=본예산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 본예산에 추가 또는 변경을 가해 편성하는 예산. 자연재해나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주로 활용한다.

관리재정수지=중앙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합한 재정의 규모를 통합재정이라고 한다. 통합재정의 수입과 지출 차이가 통합재정수지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 등을 제외한 것으로 정부의 순(純)재정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유럽연합(EU)과 유로화 탄생의 초석이 된 조약. 경제와 화폐의 통합은 물론 공동의 외교정책과 안보정책, 내정과 사법에 관한 회원국의 협조를 약속하는 것 등이 조약의 골자였다. 누적 공공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60%, 연간 재정적자는 GDP의 3%를 넘지 못한다는 유로존의 황금률도 이 조약 부속서에 명문화돼 있다.

조진형 한국경제신문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