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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481호 2015년 8월 24일

Book & Movie

[Book & Movie] 포퍼의 한계…시장·개인보다 국가·정치 중시…''비판의 자유''가 전체주의 도그마를 없앤다

칸트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머릿속에 갖는 생각을 의미하는 idea를 “생각(Idea)=이성(Reason)이란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은 후자를 받아들이면서 Idea를 Ideal로 모호하게 바꾸고 앞의 관계식을 결합하여 Real=Reason이란 희한한 등식을 고안해냈다. 그리하여 실존하는 것은 다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합리적이며 선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선의 주체는 바로 현존하는 프러시아 국가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헤겔…“국가는 선하다”

헤겔에게 국가란 ‘이성’을 가진 유기체였으며, 이 이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 역사란 세계의 법정이며 따라서 그것은 결과적으로 누가 이기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헤겔식 사고는 현실의 강한 국가는 당연히 선하다는 닫힌 사고를 낳게 된다. 헤겔은 한편으로 중세기독교가 브루노 및 갈릴레이를 박해한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마치 올바른 과학관을 가진 것처럼 표방했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객관적 지식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제시함으로써 열린사회와는 정반대의 길로 끌고 갔다.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국가를 강조했던 헤겔은 법 앞의 실질적 평등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정 이론에서도 “국가와 그 헌법을 보존하고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참으로 살아있는 주체는 정부”라고까지 주장했다.

포퍼는 헤겔이 후일 히틀러에 의해 크게 왜곡된 독일민족주의 형성에도 기여했다고 본다. 본래 민족주의란 종족적 본능, 정념 및 편견에 호소하는 것이며 개인의 책임을 집단적 책임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주의와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열린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플라톤이 그리스인-야만인의 관계를 주인-노예관계로 본 것이 바로 그 예이다.

포퍼에 의하면 본격적으로 독일 민족주의가 형성된 것은 허풍쟁이 피히테와 야바위꾼 헤겔 때문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민족주의라는 정서를 없애기보다는 그것이 강력한 프러시아에 의해 충족될 수 있다는 식으로 교묘히 방향을 돌려 악용했다.

플라톤…‘위대한 철인’

플라톤은 역사를 퇴보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그 전개를 막기 위한 인공적 방법으로 지도층을 공산화하고 전능하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위대한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를 지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투쟁의 흐름으로 보았으며 그것은 곧 발전의 과정으로 간주됐다. 즉 플라톤은 계급투쟁을 막아 불평등한 사회가 지속되기를 원했지만,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통한 평등 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법칙주의와 유물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거시적 역사법칙에 따라 사회현상을 예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후자는 경제주의(economism)라고도 부른다. 하부구조인 인간의 경제생활에 기반해 상부구조인 사상이나 관념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질을 중시한 점에서 헤겔의 관념론과 다르며, 또한 인간의 존재는 심리(의식)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으로 정해진다는 점에서 밀(J.S. Mill)의 심리주의와도 다르다. 마르크스 이론에 의하면 모든 사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포퍼는 ‘민주적 간섭주의’를 강조한다. 국가의 계획이 과다해 많은 권력이 집중되면 개인의 자유가 상실되고 결국 ‘계획의 종말’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계획의 역설). 그래서 포퍼는 유토피아적, 전체적 사회공학이 아니라 점진적 사회공학을 제안한다. 국가의 간섭은 개인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는 제도적인 것이 더 바람직하다.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는 누가 통치자이어야 할 것인가를 다루었다. 그러나 포퍼는 “통치자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보았다.


포퍼의 오류…사회공학 신봉

포퍼가 공격한 것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식의 유토피아적, 독단적, 반민주적, 역사법칙적 사회 발전이다. 그가 옹호하고자 한 것은 열린사회, 곧 비판과 토론이 자유로운 민주사회였다. 포퍼의 열린사회론은 사고의 개방, 반대를 허락하는 비판적 합리주의를 통해 사회가 바람직한 상태로 진보해 간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기도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 포퍼 자신도 비판과 토론 앞에 열려 있어야 한다.

첫째, 포퍼는 역사주의에 기대어 독단을 부리는 철인(플라톤), 국가(헤겔), 노동자(마르크스)들에게 점진적 민주정치로 나오라고만 인도했다. 그 민주주의의 한계를 성찰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시대 근본 과제는 그가 과신했던 민주주의가 되레 포퓰리즘이란 모습으로 변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국면이다.

오늘날의 적은 플라톤도 헤겔도 마르크스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암묵적으로 칭송한 민주주의란 기제를 교묘히 활용하여 사회주의, 재분배주의, 집단주의 정책 이념을 구현하려는 새로운 전체주의자들이다.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인종주의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이름을 내걸고 반(反)개인, 반(反)자유, 반(反)시장 정책을 기도하는 새로운 적들이 바로 그들이다.

둘째, 포퍼는 공산주의에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포퍼는 마르크스를 “불굴의 인도주의와 정의감”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위선적 변론가들’인 소위 자유방임형 자유주의자들을 “부끄러움도 없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라고 보았다. 편견을 가진 그의 사고 또한 충분히 갇혀 있었던 셈이다. 그가 이상적으로 본 체제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쯤이었을 것이다.

셋째, 포퍼는 경제적 결정론을 신봉한 마르크스가 정치 및 국가의 힘을 간과(정치무력론)했다고 비판하고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제 약자를 보호할 것을 주장했다. 정치의 창을 열고 여기서 비판과 토론 과정을 거쳐 좋은 사회정책을 산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의 창을 통해 구원자로 들어온 국가가 오히려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억압할 위험을 간과했다. 비록 곳곳에서 이 국가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사회 공학(social engineering)’이란 관념 자체가 국가 계획주의를 신봉하는 것이다. 자생적 질서보다는 계획된 질서, 시장과 개인보다는 국가와 정치를 더 중시하는 그의 시각은 또 다른 의미의 닫힌 사회를 생산할 위험이 있다.

하이에크…시장·개인 강조

그는 역사법칙주의를 치열하게 비판하면서도 사회공학이란 또 다른 함정에 상당히 빠져든 것이다. 이 때문에 그를 고전적 자유주의의 반열에 포함하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하이에크는 두 개의 창을 제시한다. 시장·개인의 창을 더 넓히되 정치·국가의 창을 줄이자고 제안한 셈이다. 역사는 포퍼보다는 하이에크가 더 정확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포퍼의 명저를 논평하는 말미에 하이에크에 다시 눈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우리 모두가 지식과 이론 앞에서는 겸손히 비판과 수정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적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준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이 조건 또한 충족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것은 포퍼가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김행범 < 부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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