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6가지 혁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2)
논술 필독서
논술 필독서
두바이, 방콕, 리우데자네이루….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현재 세계 전역에서 급속히 성장 중인 대도시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대 기후권에 위치해 있다는 겁니다. 20세기 후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온대 기후권에 있었습니다. 예컨대 런던과 파리, 뉴욕과 도쿄가 그렇죠.

그렇다면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사람이 살 수 없었던 사막이나 열대기후에서 대도시가 출현하게 된 것은 에어컨 덕분입니다. 냉기(冷氣)를 이용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전 세계 거주 문화가 달라졌고 인류의 대이동이 가능해진 것이죠.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이 발명되고 나서 냉방이 가능해지고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죠. 하지만 혁신적 아이디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러면 냉동기술의 발전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까요.
재생 기술을 빠뜨린 최초의 녹음기 ‘포노토그라프’
재생 기술을 빠뜨린 최초의 녹음기 ‘포노토그라프’
호수의 얼음을 팔아 갑부가 된 남자

1843년 미국 보스턴에서 한 남자가 얼어붙은 호수의 물을 열대 지역에 팔아 떼돈을 벌 생각을 합니다. 19세기 미국판 봉이 김선달이라 할 만한 그는 프레더릭 튜더였습니다. 얼음을 전 세계에 판매하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고 초반에는 사업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15년 뒤 얼음 무역은 흑자로 돌아서고 한 세기가 채 되지 않아 얼음은 필수품이 됩니다. 따뜻한 겨울이 닥칠 때마다 신문에서 ‘얼음 기근’을 걱정하는 기사를 쓸 정도였지요. 이후 자연에서 채취한 얼음을 이용한 냉각은 미국 사회의 지형을 바꿔놓게 됩니다.

당시 시카고에는 가축을 도살해서 가공하는 식육 공장이 성행했습니다.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고기를 도심으로 배송하기 쉬웠던 때문이죠. 여기에 얼음으로 채운 냉각 시설이 도입되면서 1년 내내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보관하고 가공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농촌이 도시에 먹거리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정착된 것이죠.

말라리아 치료를 위해 발명된 냉장고

냉강기 발명한 의사 존 고리
냉강기 발명한 의사 존 고리
냉동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깨닫자 많은 사람들이 인공 제빙기술을 개발하려고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공 제빙은 돈벌이가 아니라 환자들을 살리려는 한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탄생했습니다.

말라리아 환자를 돌보던 의사 존 고리는 얼음이 열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접 얼음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는 마침내 냉각기계를 발명했습니다. 더 이상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오는 얼음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됐지요. 이후 냉동기술은 에어컨에서부터 인간의 수정란을 냉동 보관하는 기술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냉동 수정란을 통해 태어난 새 생명과 사막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거대 도시에 이르기까지 지난 두 세기 동안 얼음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지요.

재생 기능을 깜빡한 녹음기의 탄생

순간냉동 아이디어 떠올린 클래런스 버즈아이
순간냉동 아이디어 떠올린 클래런스 버즈아이
안경부터 망원경까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우리 시야를 크게 넓혔다는 주장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 노래할 때 진동하는 성대는 어떨까요? 목소리 또한 시야와 마찬가지로 다른 수단을 통해 크게 증폭됐습니다.소리와 관련한 발명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에디슨의 축음기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앞서 소리를 녹음하는 기계를 발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출판업자 에두아르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은 1850년대에 목소리를 음파로 기록하는 장치인 포노토그라프(phonautograph)를 발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발명품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 데 바로 ‘재생’ 기능이 없었던 거죠.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르탱빌은 소리를 음파로 기록하고 이 음파를 읽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소리를 녹음하는 장치가 아니라 소리를 글로 옮기는 장치를 발명한 셈이죠.

라디오의 등장과 인권운동의 시작

라디오와 진공관은 소리와 관련한 테크놀로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명품입니다. 이 둘은 소리와 관련한 테크놀로지의 혁신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라디오가 대중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전역에서 재즈음악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듀크 엘링턴이나 루이 암스트롱 같은 연주자들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지요. 이들은 연예인으로서 재능을 발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부와 명성을 갖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깁니다. 실제로 이런 연주자 중 다수가 인권운동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진공관으로 인해 소리 증폭이 가능해지자 스피커를 중심으로 대중 연설과 집회가 가능해집니다. 진공관 증폭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성대의 한계 때문에 한 번에 1000명 이상에게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마이크라도 많은 스피커에 연결하면 가청 범위를 확장할 수 있었죠.

마이크와 증폭기가 없었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전설적인 연설은 불가능했겠지요. 또 진공관 증폭기 덕분에 정치적 집회에 맞먹는 음악공연도 가능해졌습니다. 킹 목사의 연설도 비틀스의 공연도 모두 진공관의 발명에 빚을 진 셈이죠.

추경아 한경BP 편집자 c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