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오늘은 여신 같은 긴 웨이브, 내일은 앞머리 붙여 귀엽게…가발의 진화
1960년대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머리카락을 자르며 눈물을 흘렸다. 끼니를 잇기 위해 애써 기른 머리를 잘라 가발공장에 팔았다. 이 가발은 미국으로 팔려나갔다. 1970년 가발 수출은 9375만달러였다.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1위 품목이었다. 이후 가발산업은 수십 년간 내리막을 걸었다. 40~50대 대머리 아저씨들을 위한 상품으로 연명했다. 사람들은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20~30대가 옷과 신발처럼 가발을 ‘패션 소품’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던 이들의 손주와 자식들이 소비자로 등장해 가발산업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가발, 이제 머리에 입는 옷”

대학생 권태준 씨(26)가 ‘가발족(族)’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갖고 있는 가발만 40여개다. 그는 몇 년 전까지 넓은 이마에 대한 콤플렉스로 우울증까지 겪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가발 덕분이었다. 가발로 넓은 이마를 가릴 수 있었다. 권씨는 “2만~8만원대로 저렴해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옷을 사듯 가발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가발 애호가들이 늘면서 ‘히트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패션가발업체 핑크에이지가 만든 1만원대 앞머리 붙임가발 ‘수시뱅’은 지난해 나왔다. 판매 시작 4개월 만에 6만개가 팔렸다. 앞머리로 고민하던 20대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모양과 간편한 착용 방식에 열광했다. 이 회사의 ‘루즈펌 4피스 붙임머리’도 ‘여신(女神) 가발’로 입소문을 타며 5만개 이상 팔렸다. 핑크에이지는 2003년 온라인몰로 출발했다. 회원 수가 70만명에 이른다. 오프라인 매장은 전국에 9개나 된다.

유통업체도 가발을 주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영플라자에 핑크에이지를, 현대백화점은 목동점·무역센터점 등에 가발업체인 파로를 입점시켰다. 정윤석 롯데백화점 여성패션부문 바이어는 “가발이 패션 소품으로 자리잡자 거부감 없이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을 입는다”

가발 수요를 크게 늘린 비결은 ‘진짜 같은 가발’을 만드는 기술이다. 가발 업체들은 합성섬유로 만든 ‘형상기억모’를 활용하고 있다. 인모(人毛)와 모습은 비슷하지만 인모 특유의 탈색과 엉킴이 없다. 열에 잘 견뎌 드라이를 해도 문제없다. 핑크에이지는 ‘그라데이션 컬러링’ 기술을 특허 출원했다. 염색을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가 어둡게 변하는데 가발 정수리에 이 같은 효과를 준 것이다. 또 내추럴 물결컬, 루즈 사선컬, 웨이브컬 등 다양한 디자인의 신제품도 내놓고 있다.

하이모는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개발한 3차원(3D) 스캐너를 활용한다. 기계에 앉으면 탈모 부위와 모양 등을 자동 측정해 정밀한 가발 제작을 돕는다. 일반모보다 얇은 ‘슈퍼베이비모’도 쓴다. 이마 라인의 촘촘한 잔머리를 재현해 ‘어색함’을 없앴다. 업계 2위 밀란은 인공 두피 두께를 0.03㎜ 이하로 줄인 초극박(超極薄) 제품을 내세우고 있다.

이현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