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뛰는 日·추격하는 中…한국만 '샌드위치' 되나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최근 의미심장한 평가보고서 하나를 내놨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언론에서 접한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냈을 법하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 1년5개월(약 1.4년).” 다음 문장은 더 심각하다. “2년 전과 비교해 격차가 6개월가량 더 줄어들다.” “코끼리가 치타의 스피드로 쫓아오는 형국”이라는 경계론이 나오는 이유다.

“어, 하는 사이에”

[Cover Story] 韓·中 기술격차 1년5개월로 좁혀졌다
보고서를 좀 더 들여다보자. 한국과 비교 대상 국가는 중국만이 아니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도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5개 주요국의 기술수준과 격차가 비교된 것이다. KISTEP는 2년마다 주요국 기술수준을 비교평가한다. 이번 보고서의 기준연도는 2014년이다. 평가는 최고의 기술수준 국가를 100%로 놓고 이뤄졌다. 전체적으론 아직 한국이 앞서 있다. 평가 대상 전체 120개 기술 중 18개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선 한국이 여전히 중국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이 높은 평가를 받은 분야는 기계·제조·공정(83.4%)과 전자·정보·통신(83.2%)이다. 인간친화형 디스플레이(91.2%), 초정밀 디스플레이 공정 및 장비(90.8%), 스마트그리드(90.3%) 등도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문제는 코끼리가 다른 부문에서 내는 속도다. 먼저 우리가 앞섰다는 디스플레이 부문을 보자. 중국 기업들은 2018년까지 디스플레이 생산능력을 한국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의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 공급과잉으로 생산량이 늘면 단가경쟁을 해야 하는데 한국기업이 불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000년대 후반 메모리반도체(D램) 시장에서 일본 엘피다와 독일 키몬다 등이 단가하락을 못 견디고 삼성전자에 굴복한 것이 거꾸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중국에는 평판디스플레이 시장의 주력품목인 액정표시장치(LCD)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BOE(중국명 징둥팡)와 2위인 차이나스타(CSOT), CEC판다의 기세가 무섭다.

“게 섰거라! 삼성”

스마트폰은 어떨까?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휴대폰 업체들은 삼성을 중국에서 내몰고 있다. 이들 기업 제품의 성능은 떨어지지만 쓰기에 불편함이 없고 가격도 삼성 갤럭시의 반값 정도여서 경쟁력이 있다. 2016년이 되면 중국이 스마트폰 시장 1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가전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창훙 등 중국 업체가 중국 스마트TV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인다. 세계 TV시장 1위인 삼성이 겨우 5위다. 하이센스와 TCL이 만든 OLED TV와 울트라HD(UHD) TV는 삼성, LG 제품과 별 차이가 없다. 중국 하이얼은 지난해 세계 가전시장에서 세탁기(19%), 냉장고(16%), 와인냉장고(15%) 등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온라인 게임 세계 1위 텐센트,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알리바바, 중국의 구글이라는 바이두 등은 10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한국은 따라가지도 못한다.

‘조선 한국’이라는 아성도 중국의 눈부신 성장으로 무너졌다. 중국의 선박건조능력은 2013년 약 214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전 세계의 39.4%를 차지했다. 한국(29.5%)보다 높다. 수주해 놓은 계약(수주잔량)도 중국에 족탈불급이다.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한국은 886척, 중국은 2443척이다. 일본의 939척에도 한국은 뒤진다. ‘중국의 수출입 물량을 나르는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지어야 마땅하다(國輸國造)’는 슬로건까지 내세우고 있다.

중국정부 강한 드라이브

자동차 부문은 안전할까. 완샹그룹은 올초 미국 대표 전기차업체 피스커를 인수하면서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다. 중국 전기차 회사인 비야디(BYD)라는 기업에는 ‘투자천재’ 워런 버핏이 투자한 상태다. 지리자동차는 스웨덴 볼보의 주인이다. 글로벌 3위 철강업체였던 포스코는 허베이, 바오산, 우한 등 중국 업체에 뒤져 6위로 밀려난 상태다. 항공·우주 분야의 경우 중국(81.9%)이 한국(68.8%)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전기차를 비롯한 태양광, 풍력 등 저에너지 산업은 중국이 한국보다 한발 앞선다. 그 뒤엔 중국 정부의 신성장 산업육성책이 있다. ‘중화부흥’과 ‘대국굴기’를 내세운 중국 지도부의 확고한 개혁·개방 정책과 과학 중시 정책은 기업의 혁신능력을 부추긴다. 이런 중국에 약점은 없을까. 아래 소박스를 보자.

■ 자유 없는 국가자본주의…중국 한계론…한 단계 진화 위한 구조조정 가능?

[Cover Story] 韓·中 기술격차 1년5개월로 좁혀졌다
중국에 대한 우려는 기대 만큼이나 많다. 우려는 성장 한계론으로 귀결된다. 이런 반응은 중국 공산당 1당 독재 정치체제와 국가주도 경제체제가 갖는 진화 한계론과 맥이 닿는다. 즉 ‘중국, 국가자본주의는 성공할 것인가’다.

김기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중국 리스크와 연착륙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는 “물리적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 조건이 필요한가”라고 물은 뒤 “그것은 창의적인 교육, 제한없는 사고, 그것을 표현하는 자유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이런 자유에 부적합 체제 위에 있어 한 단계 높은 진화를 이뤄내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중국은 일본, 미국, 유럽연합(EU)이라는 경쟁자와 달리, 국가주도형 경제로 운영된다. 질적 성숙을 위해선 구조개혁이 필수적인데,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개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는 원초적으로 어려운 한계가 있다. 2009년 이후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바오바(保八), 즉 8%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다. 7.6%를 기록했던 2012년 2분기부터 중국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썼다. 정부 개입에 중독된 시장이 뿌리깊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해선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본다. 1당 독재와 집단지도체제라는 권력구조는 중국의 연착륙에 치명적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자원배분이 보다 효율적으로 되기 위해 시장주도형 경제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개혁을 위해 중국이 혼란을 감내할 수 있을까. 심하게 뒤틀린 금융시장과 임금시장, 자유화는 시한폭탄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