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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471호 2015년 5월 18일

한국사

[한국사 공부] 김윤후, 몽골 침략에 온몸으로 맞서다


1231년, 유라시아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몽골이 드디어 고려마저 침략하게 됩니다. 무려 40년에 걸친 장기간 전쟁의 시작이었지요. 그 결과는 비록 몽골과 강화를 맺는 것이었고 국토는 황폐해졌으나 세계사적으로는 몽골에 대항하여 40년이나 버틴 항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려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저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처인성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생몰연도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승려 김윤후

처인성은 고려 시대 야트막한 토성으로서 현재 약 250m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1232년 이곳에는 몽골의 2차 침략을 피해 많은 백성이 모여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을 지나 수원 쪽으로 진격하던 몽골 장군 살리타와 몽골군은 이를 알고 즉각 포위한 후 공격을 감행합니다. 한 마디로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 피신하고 있던 승려 김윤후가 활을 쏘아 적장 살리타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장수를 잃은 몽골군은 철수하게 되고 2차 몽골의 침략은 일단락됩니다.

곧 이 사실을 알게 된 고려 고종은 승려 김윤후에게 무신으로서 최고의 벼슬인 상장군직을 제수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처인성 전투입니다. 실제 답사를 해보니 성이라고 하지만 낮은 언덕 정도인데, 의외로 사방이 탁 트인 곳으로 적군이 어디에서 공략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려사』의 그 다음 서술입니다. 생몰연도도 묘연한 이 승려 김윤후는 오히려 자신에게 내려진 상장군을 사양합니다.

그는 “전투할 때 나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상을 받겠는가?”라고 하며 극구 사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분도 금세 찾을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될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서술된 부분, 즉 김윤후가 살리타를 사살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고 배운 걸까요?


우리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승병장의 전통

늘 그렇듯 타임머신이 없기에 정확하게 과거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작은 처인토성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다 정말로 김윤후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화살에 살리타가 맞았거나 아니면 실제 김윤후가 사살했지만 굳이 이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승려답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또한 여러분도 얼핏 알고 있는 우리나라 ‘승군’ 또는 ‘승병장’에 대해서 생각이 날 거예요.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사명대사나 서산대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승려들이 있었던 전통이 이미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김윤후는 이 처인성 전투에서만 활약한 것이 아니어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인성 전투가 있은 지 정확하게 21년이 지나고 나서도 변함없이 김윤후는 끈질기게 침략해 오는 몽골에 맞서 대몽항전을 이끌며 빛나는 승리를 얻어냅니다.

노비문서 불살라 사기를 북돋은 지장 김윤후

1253년 몽골의 5차 침략에서 그들은 삼남으로 내려가는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성을 포위하고 대규모 공격에 나섭니다. 당시 이 성을 지키고 있던 이는 바로 김윤후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당연히 이때에도 김윤후가 곧 승리를 얻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었지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1231년 처음으로 몽골이 침략하여 이곳 충주성에 도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충주성의 지배층은 도망가기 바빴고 정작 성을 지킨 것은 노비들로 구성된 군사들과 이곳에 살고 있던 힘없는 백성들이었지요. 그런데 겨우 성을 막아낸 후 되돌아온 지배층은 관청의 은으로 된 그릇이 없어졌다며 이를 성을 지킨 이들의 죄로 물어 벌을 주려 했습니다. 당연히 억울한 백성들은 결국 궁지에 몰리다 반란을 일으키게 되지요. 처음에는 이들을 타일러 잘 수습이 되는 듯하다 결국 무력으로 진압하게 됩니다. 이를 기억하는 충주성 주민들은 다시 몽골이 침략해 오자 선뜻 나서서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몽골에게 포위 당한 지 이미 70여 일이 지나고 식량마저 바닥난 절망적 상황에서 김윤후는 성안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적을 물리치면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관작을 나눠 줄 것이니 자신을 믿으라고 설득합니다. 그러고선 관청에 보관되어 있던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노획한 말 등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언행일치를 보여준 것이지요. 곧 용기를 얻은 성안의 백성들은 힘을 합쳐 몽골과 싸워나갔고 마침내 몽골군을 물리치게 됩니다. 또한 고려 조정은 김윤후뿐만 아니라 관노와 백정에 이르기까지 관작을 내려 줍니다. 약속을 지킨 것이지요. 그 후 김윤후는 벼슬직에 얼마 안 있다 곧 사직하고 홀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몽골과 기나긴 전쟁에서 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 그것은 바로 김윤후처럼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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