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지폐 호조태환권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 호조태환권
취미 혹은 소중한 물품을 간직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물을 모은다. 음반, 우표, 화폐뿐 아니라 농구화나 희귀 코카콜라병까지 다양하게 수집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어떤 이들이 인류를 ‘호모 컬렉투스(수집 인간)’라고 부르는 이유다. 수집은 쉼을 위한 취미 활동이지만 세상을 더 배우고 수집품을 통해 특정 분야 지식도 늘릴 수 있다. 화폐 수집은 2000년 역사에 빛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취미다. 화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는 교환의 매개체를 넘어 발행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역사성을 배우고 돈의 소중함도 알게 해주는 화폐 수집의 무한한 매력에 빠져드는 화폐 수집가들이 늘고 있다.

중세 유럽, 교양과 부의 척도

중세 유럽에서는 희귀한 화폐를 얼마나 소장하고 있는지가 교양과 부(富)의 척도로 통용됐다. 그만큼 중세에 화폐 수집은 ‘귀족의 취미’이자 ‘취미의 제왕’이었다. 현대에 화폐 수집은 가장 손쉽고 간편한 취미다. 지금 당장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발행 연도 순으로 모아 시작할 수도 있다.

화폐는 시대상이 반영된 대표적인 유물로 화폐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는 희소성, 보존상태, 인기도 등이다. 물량이 적고 보존상태가 뛰어나면서 높은 인기로 수요가 많을수록 그 가치가 올라간다. 희소성은 화폐의 가치 판단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화폐의 잔존수량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종류의 화폐라면 보존상태에 의해 화폐 가치가 수 배에서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주화는 대부분 구리, 아연 등의 물질로 이뤄져 있어서 동전이 사람 손에 닿으면 화학반응을 하며 변색이 된다. 따라서 희소 동전을 발견하면 습하지 않은 곳에 보관하고 손으로 만지지 말아야 한다.

지폐에는 화폐 디자이너들의 예술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돼 있다. 넓은 지면에 펼쳐지는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도 수집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다. 금화, 은화, 동화 등 소재별로 다양한 화폐를 수집하는 컬렉터들도 많다. 이외에 기념주화의 꽃이라 불리는 올림픽 기념주화 및 인물, 장소, 운송수단 등 선호하는 주제를 골라 수집하는 방식도 있다.
스위스 지폐
스위스 지폐
대한제국 20원 금화, 1억4500만원

국내에서 100년 전 발행된 20원짜리 금화 한 닢은 현재 얼마일까? 최근 주화 경매에서 대한제국 당시 찍어낸 금화 20원이 1억4500만원에 낙찰됐다. 국내 최초의 근대 지폐 ‘호조태환권’도 경매에서 6400만원에 팔렸다. 호조태환권은 1893년 발행된 지폐로,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경제 근대화를 위해 추진했던 화폐개혁 때 발행됐다.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 유통되지 못한 채 대부분 소각됐지만, 이번 경매에 부쳐진 호조태환권은 6·25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됐다가 한·미 당국 협의로 62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 것이다.

대한제국 20원 금화
대한제국 20원 금화
중국에서도 희귀 화폐에 대한 수집 열기가 뜨겁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5세대 런민비(人民幣) 이전에 나온 구권을 소장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터넷을 통한 거래가 활발하다. 가장 인기 있는 구권은 1980년도 판 4세대 런민비 가운데 50위안권(1위안은 약 180원) 지폐로, 당시 발행된 9종류의 지폐 가운데 발행량이 가장 적어 시세가 액면가의 20배인 1000위안을 웃돈다. 1950년대에 발행된 2세대 런민비 가운데 3위안권 지폐가 현지 언론에 공개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64년 유통이 중지돼 회수된 3위안권은 5세대까지 나온 런민비 중에서 한 번도 발행된 적이 없는 액면가여서 그 가치가 수천만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서 가장 화려한 스위스 지폐

최근 미국에서 열린 헤리티지 옥션에서 1796년도에 발행된 25센트짜리 주화가 16억원에 팔렸다는 언론 보도에 미국에서도 화폐 수집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상 액면 가치가 가장 높은 지폐는 미국에서 발행됐다. 10만달러(약 1억원)짜리 지폐로 1969년 이후로는 발행되지 않는다. 10만달러 지폐가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 만큼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귀 화폐로 인기가 높다.

화폐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지폐는 단연 스위스 지폐다. 전 세계 260여개의 다양한 지폐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화려하게 인쇄된다. 또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나라들이 지폐를 ‘가로’로 인쇄하는 반면 스위스 화폐는 인쇄가 ‘세로’로 되어 있다. 이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받을 때 세로로 주고받는 데서 착안한 스위스의 혁신성과 실용성을 엿볼 수 있다. 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지폐를 인쇄해 매우 복잡한 패턴을 구현하고 있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찬사도 듣는다. 다른 나라 지폐에 비해 지폐 속 인물도 매우 디테일해 세계에서 위조하기 가장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짐바브웨 100조달러 ‘0’ 14개

짐바브웨 지폐
짐바브웨 지폐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는 큰 부를 불러온다는 행운의 속설이 도는 짐바브웨 화폐, 실제 화폐로도 사용할 수 있는 디즈니·스타워즈 주화 등도 화제다. 아프리카 국가 짐바브웨는 숫자 ‘0’이 14개나 붙은 100조달러짜리 지폐가 발행된 적이 있다. 지폐 액면가는 엄청나지만 발행 당시 가치는 1달러 정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너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9년 화폐개혁으로 발행 17일 만에 사라진 100조달러는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여서 최근에는 한 장당 2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닌 엄연한 법정통화로 사용할 수 있는 디즈니 캐릭터 주화, 스타워즈 주화도 있다. 법정통화는 법률상 시장에서 강제 통용력과 재화값을 치를 수 있는 지급 능력을 갖춘 화폐다. 이들 주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있는 니우에(Niue)다. 니우에는 뉴질랜드령에 속하는 주민 2000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나라다. 디즈니 주화는 금화와 은화 두 종류로 미키·미니 마우스, 플루토와 구피 등 디즈니 캐릭터가 인쇄돼 있다.

가장 비싼 디즈니 주화를 393파운드(약 66만4000원)에 살 수 있지만 니우에 섬에서 실제로 사용할 경우 16파운드(약 2만7000원) 가치밖에 없기 때문에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스타워즈 화폐는 루크, 요다, 다스베이더 등이 새겨져 있고 2뉴질랜드달러(약 1780원)에 통용된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장두원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 2년) seigic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