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 6개월에 걸친 노동개혁 사회적 합의에 사실상 실패
◆노·사·정 대타협 결렬

한국노총이 8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했다. 이로써 6개월간의 논의가 물거품이 됐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8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며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정부의 질 낮은 일자리 정책으로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며 결렬의 책임을 정부로 돌렸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총이 결국 대화를 저버린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 4월9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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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간 끌었던 노사정위원회의 노동개혁안 논의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노측 대표인 한국노총이 결렬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노동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노사정위원회는 어떤 곳이고, 그동안 어떤 것을 논의했으며, 왜 결렬된 걸까? 그리고 그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노사정위원회란?

노사정(勞社政)위원회란 근로자와 사용자, 정부 대표의 모임이다. 노동정책 및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됐으며 현재는 제4기 노사정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법’ 개정에 따라 2007년 공식 이름이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로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주요 노동정책 및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경제 및 사회 정책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제도·의식 및 관행의 개선 △노·사·정 협력 증진을 위한 사업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생긴 1기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2월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90개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에 합의함으로써 나라경제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데 적지않은 힘이 됐다.

네덜란드와 독일 부흥 이끈 바세나르 협약과 하르츠 개혁

노사정위원회는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과 독일 하르츠 개혁을 본받은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은 1982년 11월 네덜란드의 바세나르에서 타결된 노·사·정 대타협을 일컫는다. 노조는 임금 동결,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였으며, 정부는 재정 및 세제로 이를 지원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원유에 의존한 호황의 후유증으로 물가와 임금이 올라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고 경제가 위기에 처한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에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경제가 좋지 않은데도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연 5~15% 임금 인상을 주장했고,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1982년 집권한 루드 루버스 총리는 노사 쌍방을 강하게 압박, 그해 11월24일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임금 인상 자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창출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 78개 사항의 바세나르 협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시간제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방식을 도입했다. 네덜란드는 이후 20년간 장기 성장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네덜란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014년 기준 5만2000달러로 우리나라의 두 배에 달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독일도 네덜란드처럼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함으로써 통일의 후유증을 딛고 유럽의 맹주에 오르는 데 성공한 사례다. 1998년 총리직에 오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2003년 ‘아젠다(Agenda) 2010’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광범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아젠다 2010은 2010년까지 활력있는 경제시스템과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시스템 구축, 노동시장 개혁을 달성하겠다는 개혁 프로그램이다. ‘아젠다 2010’과 함께 추진된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에 성공함으로써 독일경제는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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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 무엇을 논의했나?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일자리가 많아야 하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소득이 늘고 소비와 투자도 늘어나 경제가 선순환 구조에 들어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당시 ‘고용률 70%’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경제정책의 초점을 여기에 맞췄다. 하지만 고용률(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좀체 높아질 조짐이 안 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올해 고용률 목표치도 66.2%다. 경직된 고용구조가 풀리지 않아서다.

네덜란드나 독일, 뉴질랜드 등 선진국은 고용시장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왔다. 그러나 우리는 옛날 방식 그대로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지고 청년층 취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게 노사정위원회가 지난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배경이다.

이렇게 발족한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노사정위원회는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통상임금 △저성과자 일반해고 요건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해왔다. 통상임금의 범위,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보호와 기간 연장, 해고 기준 명시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사측은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면 인건비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기 때문에 일정 연령 이후엔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금체계도 현재 근무연수가 늘면 자동으로 임금도 늘어나는 연공서열형 대신 성과에 따라 주는 성과급으로의 개편을 요구했다. 또 업무 성과가 부진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정 대표들은 한때 의견이 접근한 듯한 듯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막판에 저성과자 해고 반대 등 5대 요구사항을 추가로 내놓으면서 사회적 합의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김동만 위원장은 ‘경제주체들 간 불신’뿐 아니라 ‘경제주체 내의 뿌리 깊은 불신’을 협상 결렬의 이유로 들었다. 한국노총 내부의 반발이 결렬의 큰 요인임을 시사한 것이다.

노동개혁 실패, 후대의 일자리 빼앗아가

노동개혁 실패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구조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청년들의 불만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사측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근로소득 상위 10% 이상 근로자의 임금 인상 자제와 비정규직·협력업체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추진하기로 사실상 합의에 이르렀으나 노동계가 막판에 이를 뒤집은 것에 실망을 느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총은 근로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5년간 동결하고, 사용하지 않은 연차수당에 대한 금전 보상을 금지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이로 인해 절감되는 돈으로 2019년까지 5년간 98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노·사·정 대타협의 불발로 청년 일자리 98만개가 날아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을 들여왔던 노사정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 주도의 ‘플랜B(차선책)’를 추진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플랜B는 근로시간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주당 52시간으로 줄이돼 대신 1~3년간은 근로시간 규정을 어겨도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는 단계적 시행으로 방향이 잡힐 전망이다. 정년 연장에 대비해 노사 자율로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을 유도하되 행정지도를 강화하는 내용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노·사·정이 설령 다시 모여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또 정부가 노동개혁안을 내놓더라도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다. 특히 야당은 “노사정이 합의하더라도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유럽의 사회적 대화 성공에는 노사의 양보와 결단 외에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슈뢰더 총리는 ‘아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경제 부흥을 기반을 닦았지만 선거에선 패배하고 말았다. 선거에 지더라도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서라면 추진해나갈 용기가 정부에도 필요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