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49) 홍콩의 경제적 부흥

기업이 창의성 발휘하게 정부는 환경만 조성
사실상 자유방임 정책

1961년부터 21년간 연 평균 9.9% 초고속 성장
홍콩의 경제적 성공은 자유시장 제도의 승리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이다. 영국이 1997년까지 지배하다가 중국에 주권을 양도했다. 면적은 제주도의 절반보다 조금 크지만 인구는 2013년 약 720만명으로 제주도의 12배를 넘는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8420달러로 한국의 약 1.5배에 이른다.

영국은 1842년 홍콩 섬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홍콩을 중국과의 교역중심지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여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원이 빈약했고 교역중심지로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1844년 홍콩의 재무장관 몽고메리 마틴은 섬을 포기해야 한다고 영국 정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1847년에는 대부분의 영국 회사가 홍콩에서 철수했다는 영국 하원 증언까지 나올 정도였다.(J M 캐럴, ‘요약 홍콩역사’, 2007)

하지만 홍콩은 1960년 이후 경제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된다. 놀라운 경제적 성공 때문이다. 1961년부터 1981년까지 홍콩의 연평균 성장률은 9.9%를 기록했다. 1960년 홍콩의 1인당 국민소득은 식민 지배를 하던 영국의 28%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98%에 달했다. 이런 홍콩의 경제적 성공은 자유방임적 정책 덕분이다.(제임스 리델, ‘홍콩의 산업화 모형’, 1973)

실제 홍콩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다. 1970년부터 발표된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홍콩은 경제적 자유도지수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고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도 지수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이 잘 준수되고 있으며 재산권도 잘 보호되고 있다. 정부의 간섭도 적어 작은 정부가 실현되고 있다.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14%에 불과하며 자본이득이나 이자 소득세뿐 아니라 부가가치세도 없다. 관세는 0%에 가까운 완전한 개방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주, 담배, 탄화수소 오일, 메틸알코올 등 네 가지 품목에만 관세가 부과될 뿐이다. 창업이 자유롭고 해고도 비교적 자유롭다.

홍콩에는 정치적 자유가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홍콩의 자유시장은 두 가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적시한다. 첫째,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전히 영국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립을 했다면 그 당시 모든 국가가 그렇듯이 복지국가를 지향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인도나 케냐처럼 됐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둘째, 존 카우퍼스웨이트가 홍콩의 재무장관으로 파견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 1997년 2월17자)

카우퍼스웨이트는 1961년부터 10년간 홍콩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긍정적 불개입주의’ 정책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것은 사실상 자유방임적 경제정책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정부는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거나 최소한의 규제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 시장에서 기업인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로 인한 손실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손실보다 적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유 시장에서는 기업인 스스로 이런 손실을 줄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극히 싫어했다. 1963년 프리드먼이 홍콩의 통계가 빈약하다고 지적하자 그는 관료에게 통계 작성을 지시하면 그들은 통계를 이용해 무엇인가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답했을 정도였다.

자유 시장이 마련되면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은 기업가들이다. 홍콩의 경제적 성공도 자유를 찾아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의 기업가들이 이룩한 것이었다. 이들이 자유를 찾아 홍콩에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 가난한 일꾼이었다. 지오다노를 설립하고 넥스트 미디어라는 미디어 그룹을 창업한 지미 라이는 중국 광둥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1960년 열두 살의 나이에 홍콩으로 밀항해 의류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세계 경제사] 기업가정신에 맡긴 자유시장 제도
정부가 기업가의 할 일을 정해준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발휘될 환경을 조성해준 것이다.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여건만 주어지면 기업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한다. 이들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창의적 관행이나 경영방식을 만들어간다. 홍콩도 산업화 초기에 부족한 자금을 가족기업을 통해 조달했다. 그래서 홍콩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도 대부분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기업 형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하든지 그것은 기업가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홍콩에서도 가족기업과 관련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 2세 기업인들은 대부분 중국본토에서 유입된 가난한 일꾼이었다. 3세대는 부모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아 어려움 없이 자랐다. 대부분 미국 등에 유학해 기업경영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도 기업가에게 맡겨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잘 알 수도 없고 기업가 스스로 생존을 위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포브스, 2012년 5월28일자)

홍콩의 경제적 성공은 기업가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홍콩은 중국이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을 때 자유 시장을 통해 성장한다. 홍콩과 중국본토에는 같은 중국인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이 처한 제도에 따라 운명도 달라졌던 것이다. 홍콩의 경제적 성공은 자유 시장이라는 제도의 승리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