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의 '나홀로 급등'은 글로벌 통화전쟁을 심화시킨다. 우리로서도 강달러와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비해 거시경제의 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한다.

◆통화전쟁과 슈퍼 달러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글로벌 경제 흔드는 强달러…세계 금융시장 요동
미국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고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달러당 원화 가치가 3일 연속 급락세를 보였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격은 1126.5원을 기록해 전날보다 3.9원(0.35%) 하락했다. 장중 한때 1129.5원까지 떨어지며 1130원대를 넘보기도 했다. ‘슈퍼 달러’는 글로벌 금융시장도 뒤흔들고 있다.

- 3월 12일 한국경제신문

‘슈퍼 달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달러 강세 여파로 글로벌 증시는 물론 원유 등 상품시장과 신흥국 외환시장까지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딛고 다시 ‘슈퍼 달러’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1.5% 하락한 1.069달러로 밀린 데 이어 11일에는 장중 한때 1.056달러까지 떨어졌다. 유로당 1.06달러 선이 무너진 것은 2003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유로화 가치는 최근 1년 새 24%, 올 들어 2개월여 만에 13% 가까이 추락했다. 1유로=1달러 선에 육박할 정도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유로화의 추락(달러 강세)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난 9일부터 양적 완화 정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서다. ECB는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사주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살포하고 있다. 돈을 무더기로 풀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올 연말쯤이면 유로화 가치가 달러와 같아지는 ‘패리티(parity·등가)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중앙은행(Fed)이 실업률이 낮아지는 등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데 힘입어 상반기 중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달러 강세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미국으로의 투자가 늘어 달러 수요가 증가하며, 달러 수요가 늘면 달러화 가치는 뛰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오는 18일 끝나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의 선제적 지침(가이던스)을 수정, 그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삭제해 금리 인상의 장애물을 제거할 것으로 보도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글로벌 경제 흔드는 强달러…세계 금융시장 요동
이처럼 달러 가치가 뛰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10일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300포인트 이상(1.85%) 빠졌으며, S&P500지수는 2개월래 하루 최대 낙폭인 1.70% 떨어졌다. 강(强)달러로 인해 미국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대규모 주식 매도로 이어진 탓이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수출채산성이 그만큼 나빠지게 된다. 도이치뱅크는 강달러 여파로 S&P500지수가 최대 9% 하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유럽의 런던 FTSE100지수도 2.52%나 추락했다.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국제 통화시장과 원자재시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 원유와 금 등 원자재 가격은 세계 상거래의 중심통화(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대체로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원자재 가격은 약세,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자재 가격은 강세를 보인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값은 전날보다 온스당 6.4달러 하락한 1160.10달러로 밀리면서 지난해 11월12일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유가도 3% 이상 급락하며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선 아래로 밀려났다.

달러화 강세와 Fed의 기준금리 인상은 신흥국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미국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펼쳤을 때만 해도 달러화가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유출되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은 주식-채권-통화 가치 강세라는 ‘트리플 강세’ 현상을 보였다. 신흥국으로 달러 자금이 몰려오면서 주가와 통화가치가 오르고, 채권 값도 뛴 것이다(채권 금리는 하락).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유동성(돈의 흐름)이 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신흥국은 ‘트리플 약세’(주식-채권-통화 가치 약세) 현상이 뚜렷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이날 하루 만에 2.29% 내린 달러당 12.36랜드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멕시코 페소와 터키 리라화 가치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브라질 헤알화는 29%, 남아공 랜드화는 14% 하락했다. 이처럼 달러 자금이 빠져나가고 통화가치가 급락하면 1997년 우리나라처럼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달러화 가치의 ‘나홀로 급등’은 글로벌 통화전쟁을 심화시킨다. 우리로서도 강달러와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비해 거시경제의 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한다. 35개월째 이어가는 경상수지 흑자 기조, 3624억달러(2월말 기준)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등이 버팀목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원화 가치가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원화 환율 변동폭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통화유통속도 사상 최저…장롱에 쌓인 돈, 경제 좀먹는다

◆‘장롱 경제화’와 통화유통속도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글로벌 경제 흔드는 强달러…세계 금융시장 요동
가계와 기업들이 돈을 장롱이나 금고에 쌓아두면서 한국 경제의 ‘장롱 경제화’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통화승수는 올해 1월 18.5로 한은이 현재의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 3월12일 동아일보

나라경제에 있어서 실물경제와 금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실물이 커야 금융도 커가고, 금융이 원활해야 실물도 잘 돌아가는 법이다. 그래서 경제에 ‘돈이 안 돈다’는 것은 일종의 위험신호로 볼 수 있다. 나라경제에서 돈이 얼마나 잘 유통되는지를 따지는 지표가 통화승수다. 통화승수란 한국은행이 공급한 돈(본원통화)에 비해 시중 통화량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준다. 본원통화가 1단위 증가했을 때 시중의 통화량이 몇 단위 증가했는지를 나타내며, 통화량을 본원통화로 나눠 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통화승수는 지난 1월 18.5로 1998년 이후 최저치다. 시중 통화량이 본원통화 공급량의 18.5배라는 뜻으로 돈이 사상 유례없이 돌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돈이 잘 돌지 않는 것일까? 이는 경제주체들의 심리와 관계가 깊다. 미래에 대한 비관(불확실성) 때문에 가계와 기업들이 돈을 장롱이나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가계는 소비를 안 하고, 기업들은 상품이 팔리지 않아 투자를 주저한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은행에 넣어둔 기업예금 규모는 작년 말 현재 321조원으로 2005년(150조원)의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처럼 경제 혈관이 막혀 돈이 구석구석에 적체돼 인구 고령화처럼 자본의 순환 구조도 늙어가는 ‘돈의 노화(老化) 현상’, 한국 경제의 ‘장롱 경제화’이 심각한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악순환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속 물가 하락)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찔끔 내린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기업들이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