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투기세력으로부터 경영권 보호할 제도 도입 시급"

왜 유럽이나 미국은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주,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요?
◆포이즌필

재계가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법제화해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2차 규제 기요틴 과제로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을 법제화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23일 밝혔다. 신주인수선택권은 특정 기간에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일정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 2월 24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포이즌필은 적대적 M&A의 방어 수법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정부에 적대적 경영권 탈취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했다. 경영권 위협에 맞서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외국에서도 허용되고 있는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도입해달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정부에 이런 요청을 한 이유는 무엇이고, 적대적 M&A 방어·공격 수법에는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자.

M&A란?

M&A(mergers and acquisitions, 기업 인수·합병)란 회사의 경영권을 직·간접적으로 취득하는 광범위한 거래를 뜻한다. M&A는 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행해진다.

첫째는 시장 지배력의 확대(시너지 효과)다. 같은 업종의 사업을 벌이는 경쟁 기업을 사들이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롯데의 GS백화점 인수 등이 대표적 사례다. 또 하나는 경영 다각화다. 다른 업종의 기업을 매수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미국의 모바일 결제 솔루션업체 루프페이를 사들인 것은 스마트폰 판매 확대를 위해서지만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모바일 금융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론 기업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순전히 투자 이익만을 위한 것이다. 사모펀드 등이 회사를 사들여 가치를 높인 후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M&A를 통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가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데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그것이다.

우호적 M&A와 적대적 M&A

M&A 가격은 대체로 매수하려는 기업의 가치(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매수 대상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상장기업이라면 보통 주가가 기준이 된다.

M&A 대금은 △현금으로 100% 지급하는 방법 △주식으로 100% 지급하는 방법 △현금+주식으로 지급하는 방법이 있다. A기업이 B기업을 100억원에 M&A한다고 하자. A기업은 100억원을 모두 현금으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부담이 많아 현금 일부와 주식 일부로 나눠주는 게 일반적이다.

M&A에 필요한 자금은 회사에서 벌어들인 돈(내부 자금)만을 활용할 수도 있고 외부 자금을 보탤 수도 있다. 외부에서 M&A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외부 투자자는 투자 목적에 따라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로 나뉜다. 전략적 투자자(strategic investment)는 기업 경영 참여를 전제로 투자하는 곳이다. 반면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ment)는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투자 수익 극대화가 목적인 투자자다. M&A는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우호적 M&A와 적대적 M&A로 구분할 수 있다. M&A 대상 기업 경영진이 M&A에 찬성하면 우호적 M&A, 반대하면 적대적 M&A다. M&A는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큰 일인 까닭에 반드시 주주총회(주총)에서 회사 주인(주주)들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 두 회사의 이사회 결의와 주총 결의로써 완결된다.

적대적 M&A 공격 수법

‘공개매수’(TOB·take over bid)는 대상 기업의 주식을 공개적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미리 대상 기업과 매수할 주식 수, 매수 가격, 매수 기간 등을 감독당국(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신고해야 한다. 매수 가격은 공개매수를 선언할 당시 주가보다 높은 게 보통이다.

‘곰의 포옹(bear’s hug)’도 공격 수법 중 하나다. 공개매수를 선언하고 인수자가 해당 기업 경영자에게 방어 행위를 그만두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파킹’(parking·지분 감춰두기)은 우호적인 제3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게 한 뒤 주총에서 기습적으로 표를 던져 경영권을 탈취하는 방법이다. 파킹은 공격 수법뿐만 아니라 적대적 M&A 위협에 대비하는 방어 수법으로도 활용된다. ‘토요일 밤의 기습작전(saturday night special)’은 방어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휴일인 토요일 저녁 황금 시간에 공개매수를 선언하는 방법이다. 미국에서 주로 사용된다.

적대적 M&A 방어 수법

적대적 M&A 공격에 대비하는 수법에는 백기사, 팩맨, 포이즌필, 황금낙하산, 황금주, 차등의결권 주식 등이 있다. ‘백기사(white knight)’는 우호적인 제3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경영권에 위협이 가해졌을 경우 회사 주식의 일정 지분을 가진 우호적인 기업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팩맨(pac man)’은 경영권 방어 기업이 거꾸로 공격 기업의 주식을 매집하는 등 정면 대결을 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같이 죽기 전략’으로 양측이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포이즌필’(poison pill·독약조항·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M&A가 벌어질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경영권이 위험하면 자본금을 늘려(증자) 주식을 새로 발행,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팔게 되면 회사를 사들이려는 측의 인수비용은 훨씬 커진다.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은 임원 해임 때 거액의 퇴직금이나 스톡옵션,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정관에 명기해 공격자의 인수 부담을 늘리는 전략이다.

‘차등의결권주’는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이다. 예를 들어 보통주는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가지는데 차등의결권주는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가지는 식이다. 이에 비해 ‘황금주(golden share)’는 보유한 주식의 수량이나 비율에 관계없이 기업의 중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이다. 차등의결권주나 황금주 제도의 도입도 적대적 M&A의 방어 수법 중 하나다. 이 밖에 주총 특별결의 요건을 강화하고 임원의 임기를 분산하는 것도 방어 수법으로 분류된다.

바람직한 경영권 보호 수준은?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포이즌필은 적대적 M&A의 방어 수법
한국에선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주, 황금주 등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포이즌필의 경우 2010년 한 차례 도입이 검토됐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반면 유럽 미국의 경우 경영권 보호를 위해 이들 방어 수단을 허용하고 있다. 구글이나 포드, 컴캐스트 같은 세계적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위해 차등의결권주를 활용 중이다.

왜 유럽이나 미국 등은 이런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 경영권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해줄 것인지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예전에 SK그룹이 소버린펀드로부터, KT&G가 세계적인 기업 사냥꾼(raiders)인 칼 아이칸으로부터 거센 경영권 위협을 당하고 비싼 수업료를 문 적이 있다. 한국 기업들의 경영은 과거보다 훨씬 투명해졌다. 독립된 사외이사제도, 외부감사 의무화 등 경영진을 감시감독할 장치도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전면 개방으로 경영권 보호 장치가 대거 없어져 투기세력이 포함된 적대적 M&A 시도가 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에도 외국처럼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