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자국 경기 살리기 위해 금리인하와 돈풀기 경쟁…글로벌 디플레가 원인

세계적인 통화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왜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와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고 돈을 푸는 것일까?
◆중국 지준율 전격 인하…‘통화전쟁’ 재연

중국 인민은 행이 현행 20%인 은행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5일부터 0.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고 4일 발표했다.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낮춘 것은 2012년 5월 이후 33개월 만에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지준율 인하로 약 5000억위안의 유동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 2월 5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또 다시 불붙은 '통화전쟁'
☞ 중국이 거의 3년 만에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본과 유럽은 양적 완화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스위스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인 프랑화 환율 방어 포기를 선언했다. 루마니아 인도 덴마크 등 9개국이 지난 1월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인하했으며 호주도 금리 인하 행진에 동참했다. 싱가포르도 통화완화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 세계적인 ‘통화전쟁(currency war)’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왜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와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고 돈을 푸는 것일까?

# 중국, 7%대 성장 지키기에 안간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대형 은행 기준으로 19.5%로 낮춘 것은 경기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지준율은 은행이 예금 중 예금자의 인출 요청에 대비해 현금으로 갖고 있는 준비금 비율이다. 지준율을 낮추면 은행이 대출해줄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 소비와 투자가 증가할 수 있다. 인민은행이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데 이어 지준율까지 낮춘 것은 중국 정부가 그만큼 자국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7.4%로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월 49.8로 26개월 만에 기준치(50) 밑으로 추락했고, 부동산 경기 역시 침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일부 투자은행은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이 없으면 올해 중국 성장률이 6%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세계 각국은 앞다퉈 기준금리 인하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또 다시 불붙은 '통화전쟁'
중국에 앞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연일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뿌리는 등 통화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통화완화 정책은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통화전쟁(환율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호주 중앙은행은 이달 초 연 2.50%였던 기준금리를 18개월 만에 2.25%로 낮췄다. 사상 최저치다. 호주는 그동안 자산 거품 등을 우려해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의 통화완화 정책이 이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루마니아 인도 페루 스위스 이집트 덴마크 터키 캐나다 러시아 등은 1월에 기준금리를 최저 0.15%포인트에서 최고 2%포인트까지 낮췄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 기준금리를 지난달만 모두 세 차례 인하했다. 싱가포르도 싱가포르 달러화의 절상속도를 늦추는 통화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지난달 15일 2011년 9월에 도입한 환율 하한선을 폐지했다. 스위스는 자국 통화의 가치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그동안 스위스 프랑화 환율이 1유로당 1.20프랑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다시 말하면 프랑화 가치가 오르지 않도록) 하한선을 두어왔는데 이를 없앤 것이다. 이와 함께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25%에서 마이너스 0.75%로 인하했다. 스위스가 환율 하한선을 폐지한 것은 ECB가 양적 완화 정책을 본격화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통화로 꼽히는 스위스 프랑화 수요 증가로 프랑화 가치가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스위스가 환율 하한선 제도를 이어가려면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프랑을 팔고 유로화를 사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외환을 매수하면서 외환보유고가 급증, 외환보유고 관리비용이 치솟게 된다.

# 유럽과 일본은 양적 완화 가속도

이번 통화전쟁은 지난달 22일 ECB가 양적 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재연됐다. 양적 완화는 기준금리를 더이상 낮출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리를 이용해 시중에 돈을 뿌리는 정책이다. ECB는 오는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시중에서 국채와 채권을 사주는 방법으로 매달 600억유로 규모를 공급할 예정이다. 총 1조1400억유로를 푸는 것이다.

ECB와 함께 일본 아베 정부도 지난해 10월 말 양적 완화를 연간 80조엔 수준까지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반면 경제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 미국은 지난해 10월 하순 양적 완화 조치를 종료했다. 이렇게 미국과 다른 국가 중앙은행 간 정책이 엇박자를 보이면서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제금융시장 변동성도 확대되는 추세다. 유로화 엔화 가치는 급락한 반면 달러화 가치는 치솟은 게 대표적이다. 현재 1유로는 1.13달러, 1달러는 119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저금리 기조 장기화와 환율변동성 확대로 인한 악영향에 유의해야 한다”며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기울고 있는 반면 ECB와 일본은행은 통화정책을 완화하면서 미국과는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디플레를 막아라’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또 다시 불붙은 '통화전쟁'
이처럼 세계 각국이 앞다퉈 통화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글로벌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유로화를 쓰는 나라들의 경제는 디플레 양상이 역력하다. 성장률은 정체되고 물가는 장기 하락하고 있다. 일본도 경기가 아주 좋지 않다. 중국도 하강 추세가 뚜렷하다. 중국의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12월 98.8로 2009년 2월 이후 최저치다. 경기선행지수는 앞으로의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미국을 제외하고 경기가 좋은 나라가 별로 없다.

IMF는 지난달 19일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3.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0월 전망치(3.8%)보다 0.3%포인트 낮은 것이다. 또 내년 평균 성장률도 3.7%로 석 달 전보다 0.3%포인트 내렸다. IMF는 “세계경제가 저유가로 일부 혜택을 받겠지만 투자 감소나 중국 유로존 일본 러시아의 성장 둔화 등 부정적 요인을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한국 경제도 세계적인 디플레와 함께 자체적인 요인으로 인해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국면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장기 침체’는 하버드대 교수인 로렌스 서머스 교수가 올초 전미경제학회에서 주장한 것으로, 경기순환 차원의 저성장 궤도를 벗어나 오랫동안 침체가 이어지는 초저성장 상태를 가리킨다. 김용옥 전국경제인연합회 팀장은 “구조적 침체를 벗어나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 완화나 노동·공공부문 개혁 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