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기업 족쇄부터 풀어라 (2) '낮은 세금'으로 부활한 '켈틱 타이거'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애플·구글 유럽본사 등 1033개 글로벌 기업 몰려
아일랜드 더블린에 설립된 세계 최대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유럽 본사. 사무실 1층을 전통 술집 펍(pub)으로 꾸몄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설립된 세계 최대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유럽 본사. 사무실 1층을 전통 술집 펍(pub)으로 꾸몄다.
더블린 중심부에 있는 국회와 트리니티대학 일대는 ‘공사판’을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 도로를 새로 깔고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최대 번화가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도 마찬가지.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더블린에선 찾아볼 수 없던 풍경이다. 2010년 재정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정부 예산’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아일랜드를 부르는 별칭)가 부활했다.’ 2013년 12월 유럽 재정위기국(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가운데 가장 먼저 구제금융을 졸업한 뒤 아일랜드 정부는 이렇게 선언했다. 한때 ‘종이 호랑이’ 취급을 받았던 아일랜드가 되살아났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4년 전 국가부도 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아일랜드 경제의 성공 비결은 뭘까.

‘기업천국’ 아일랜드

[왜 기업가 정신인가] 법인세율 12.5%, 한국의 '절반'…글로벌 기업들 아일랜드 '러시'
“세계 유망 기업들이 아일랜드로 몰려오고 있다.” 아일랜드투자개발청(IDA)의 설명이다.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1033개가 아일랜드에 유럽 거점을 두고 있다. 구글, 애플,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화이자 등 세계 10위권 제약회사 중 9개가 아일랜드에 유럽본사를 세웠다. 북대서양 북동부 끝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약점, 인구 450만명의 소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굵직한 기업을 유치한 데 따른 파급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구글이 유럽본사를 아일랜드에 둔 것을 시작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들도 줄줄이 아일랜드로 왔다. 뒤이어 인터넷 결제서비스 페이팔, 아마존, 에어비앤비도 속속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MS에서 아일랜드 마케팅기업 허브스팟으로 이직한 데클란 피츠제럴드 HR 매니저는 “아일랜드가 IT기업을 마치 ‘블랙홀’처럼 끌어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불가침의 영역…‘낮은 법인세’

아일랜드로 기업들이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일랜드는 수십년간 법인세율을 12.5%로 유지했다. 스웨덴(26.3%), 오스트리아·덴마크(25%) 등의 절반도 안 된다.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물론 2008년 유럽 금융위기 직후 법인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2008, 2009년 성장률이 -3.5, -7.6%로 곤두박질치고 2010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국민들 사이에서 ‘50%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세를 낮추고 기업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이 팽배했다. 자국 기업을 아일랜드에 빼앗긴 미국 독일 프랑스 등도 법인세를 높이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브라이언 카우언 전 총리는 “법인세만큼은 절대 건드릴 수 없다”고 버텼다. 경제가 어렵지만 기업에 대한 세금을 높여선 외국기업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엔다 케니 현 총리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지출을 삭감하면서도 법인세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못박았다.

기업 수출 지원기관인 엔터프라이즈아일랜드(EI)의 줄리 시나몬 최고경영자(CEO)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 기업 환경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며 “낮은 법인세는 아일랜드가 해외 각국 기업에 ‘안심하고 투자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창조·혁신엔 세금 안 매겨’

아일랜드는 해외에서 들어온 기업들에 각종 세제 혜택도 준다. 기업이 특허·상표·디자인·소프트웨어 등 지식재산권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본국으로 송금할 때 세금을 한푼도 안 매긴다. 아일랜드에 법인을 설립한 뒤 세법상 거주지를 다른 국가에 등록하는 것도 허용해준다. 수출 관련 과세도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 영국, 독일 등 주변국에서 “아일랜드는 조세피난처”라고 비난할 정도다.

이같이 다양한 세금 혜택이 기업을 끌어들이는 촉진제가 된 것이다. 글로벌 IT 기업은 이런 우호적인 세금 혜택을 고려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구글은 2012년 세운 제1사옥에 이어 최근 제2사옥을 더블린에 짓기로 결정했다. 구글의 신규 투자액은 1억5000만유로에 달한다. 브렌든 캐넌 인텔 유럽본사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아일랜드에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은 자국 기업, 외국 기업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혜택을 준다”며 “그것이 아일랜드가 각광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더블린=전예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