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혁신기업의 산실 실리콘밸리를 가다 (1) 돈이 아니라 꿈을 좇는다
[왜 기업가정신인가] 메모앱 '에버노트'로 세계 제패한 필 리빈 "세상 바꾸길 원하면 청년이여! 창업하라"
실리콘밸리 서북부 레드우드시티. 에버노트 사옥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필 리빈 최고경영자(CEO·40)가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왜 구글, 애플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창업했느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웃더니, 어렸을 적 얘기를 꺼냈다.

총명했던 여덟 살 꼬마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꼬마는 ‘인류를 똑똑하게 만들어 세상을 계속 지켜내는 것’을 고민했다. 너드(nerd·컴퓨터만 아는 괴짜)였던 그가 2007년 ‘무엇이든 잊지 않도록’ 메모 애플리케이션인 에버노트를 만든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만나자마자 악수를 청한 리빈 CEO는 에버노트의 코끼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로고는 ‘코끼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An elephant never forgets)’란 속담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메모를 통해 완벽한 기억력을 갖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에버노트도 창업 초창기엔 좌절

에버노트는 리빈 CEO가 세 번째 창업한 회사다. ‘인류를 똑똑하게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 보스턴대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 회사가 처음이다. 첫 회사를 3년 만에 팔았고 두 번째로 설립한 보안소프트웨어 회사도 6년 만에 매각했다.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2007년 ‘창업의 산실’ 실리콘밸리로 옮겨 세 번째 회사인 에버노트를 세웠다. 두 번의 창업 경험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험난했다. 1년 만에 투자 원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선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 등 수십명의 지인에게 급전을 빌려 근근이 회사를 꾸려나갔지만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며 회사 문을 닫기로 결정한 어느 날 새벽. 그는 홀로 남아 30여명의 직원에게 보낼 작별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쓰던 그때, 이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떴다. ‘에버노트’를 잘 쓰고 있다는 그 이메일의 끝엔 ‘혹시 투자가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해가 뜨기 무섭게 바로 전화를 했고 5억원가량 투자를 유치했다. 그 돈으로 6개월간 운영비를 마련해 서비스를 보강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투자가 이어졌다.

에버노트의 성공을 보고 창업에 관심이 큰 젊은이들에게 그는 “먼저 왜 창업을 하는지 솔직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많은 이들이 부자가 되려고 창업하지만 대부분 회사는 빚을 지고 문을 닫는다”며 “돈 버는 게 목표라면 차라리 큰 회사에 취직해 경력을 쌓는 게 낫다”고 말했다.반면 10년간 밤낮없이 일할 자신감과 한 푼도 못 벌어도 좋다는 배짱이 있으면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창업 동기 측면에서 ‘돈’보다는 ‘세상을 바꿔 놓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래를 바꾸겠다는 기업인의 꿈

리빈 CEO는 이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에버노트가 지난 5년간 매년 80~120%씩 매출이 급증했고 2015년엔 사용자 수와 수익이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탁월한 사업성이 화제가 되자 지난해 인수 제의가 잇따랐다. 3~4년 전 1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받은 에버노트의 기업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회사를 팔면 큰돈을 손에 쥐고 평생 편안히 살 수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리빈 CEO는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독립 회사로 남아 2~3년 뒤 상장시킬 계획”이라며 “내 목표는 세계 1위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초심을 지닌 100년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삶은 험난한 도전의 연속이다. 작년부터는 스마트폰에만 머물지 않고 스캐너, 카메라는 물론 혈압계 같은 건강관리기기와 웨어러블 기기에도 에버노트 앱을 탑재하고 있다. 리빈 CEO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는 제품이나 경험은 모두 비즈니스 대상”이라며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스마트 워커(smart worker)’가 주된 고객”이라고 말했다.

리빈 CEO는 앞으로 5년 후쯤이면 전 세계 70억 인구 중 10억명이 에버노트의 사용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펼쳐 보이면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이 세상이 조금 더 똑똑해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레드우드시티=윤정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