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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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 hckang@hankyung.com
◆일본 국가신용등급 강등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1일 일본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한 단계 내렸다. 아베노믹스가 흔들리며 일본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재정난도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무디스가 일본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11년 8월 이후 3년4개월 만이다. 이번 조치로 일본 국가신용등급은 한국(Aa3)보다 낮아졌다.

- 12월2일 한국경제신문

☞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이 한국보다 낮아졌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미국 맨해튼의 빌딩과 기업들을 대거 사들이면서 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때와는 금석지감이다. 왜 이처럼 일본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신용등급이란?

신용등급은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약정대로 상환할 가능성을 표시하는 부호다. 신용평가회사가 국가나 기업, 금융회사, 개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매긴다. 어떤 신용등급을 받느냐는 기업이나 국가, 개인의 채무상환능력이 핵심이다. 기업의 경우 경영관리위험, 산업위험, 사업 및 영업위험, 재무위험, 계열위험 등이 기준이다. 국가는 성장률, 정부부채, 재정건전성 등 경제적 요인 외에 정치적 리스크도 평가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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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회사(신평사)는 각 경제주체들의 신용 상태를 전문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공표하는 회사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3대 신평사로는 S&P(Standard & Poor’s)와 무디스(Moody’s), 그리고 피치(Fitch)가 꼽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거나 돈을 빌리려는 기업이나 금융회사, 국가는 먼저 이들로부터 자신의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글로벌 3대 신평사는 모두 미국 회사인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종종 결정적인 순간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신정평가(NICE), 한국신용평가(KIS), 한국기업평가(KR) 등 3대 신평사가 있다. 이 가운데 KIS는 무디스, KR은 피치가 대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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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은 평가회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20여 단계로 나뉜다. S&P의 경우 가장 높은 등급이 AAA(트리플 A)이고, AA+, AA, AA-, A+, A, A-, BBB+, BBB, BBB-, BB+, BB, BB-, B+, B, B-, CCC+, CCC, CCC-, CC, D 등 21단계다. 무디스는 Aaa, Aa1, Aa2, Aa3, A1, A2, A3, Baa1, Baa2, Baa3, Ba1 등으로 표기한다. 이 가운데 BBB-(Baa3) 이상 등급이 투자적격등급, 그 아래는 투자부적격등급으로 분류된다.

신평사들은 또 기업이나 나라의 신용등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란 전망 자료도 발표한다.

‘긍정적(positive)’은 향후 신용등급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며, ‘안정적(stable)’은 당분간 현재의 신용등급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반면 ‘부정적(negative)’은 신용등급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

무디스는 1일 일본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맨 위인 ‘Aaa’보다 네 단계 밑이다. ‘A1’ 등급은 한국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보다 한 단계 낮고, 이스라엘 오만 체코 등과 같은 수준이다. 무디스는 하지만 등급 전망에 대해선 “향후 대대적인 재정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펀더멘털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며 ‘안정적’으로 판단했다.

또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 기준으로도 한국 신용등급은 일본보다 높은 상태다. 피치는 2012년 5월 일본 신용등급을 A+로 내리고, 같은 해 9월 한국은 AA-로 올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한국(A+)보다 한 단계 높은 ‘AA-’로 유지하고 있으나 전망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디스는 일본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재정목표 달성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 △성장 촉진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 고조 △정책 신뢰성 저하로 채무상환능력 감소 등을 꼽았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나 아베 내각의 의사 결정 등으로 미뤄볼 때 재정건전화를 달성하고 성장전략도 만들겠다는 목표가 제대로 달성될지에 대한 의문이 쌓여 결국 신용등급 조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세계를 호령하던 일본이 왜 이렇게 됐지?)

일본 정부는 경기를 살리는 동시에 소비세율 인상으로 재정 목표 달성을 도모하겠다며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장담했는데 최근 상황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특히 아베 정부가 경기 부진과 여론의 반발에 밀려 내년 10월로 예정했던 소비세율 2차 인상(세율 8%→10%) 시기를 2017년 4월로 1년6개월 미룬 게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일본의 나랏빚(국가부채)은 한 나라가 1년 동안 생산해낸 부가가치의 합계인 GDP(국내총생산)의 243%(2013년 기준)에 달한다.

재정파탄으로 나라가 위기에 몰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위험한 수준이다. 나랏빚을 줄이려면 세수(세금수입)를 늘려야 한다. 세수를 늘리려면 경기가 좋아져 기업들이나 개인이 세금을 전보다 많이 내거나, 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베 정부는 지난 4월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소비세의 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했다. 그랬더니 조금 살아나는 듯했던 경기가 다시 얼어붙어 2분기 연속 GDP가 쪼그라들었다.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뒷걸음치면 경기침체로 본다.

아베 정부는 소비세율을 내년 10월 다시 10%로 올릴 계획이었는데 경기가 하도 나빠져서 이걸 늦췄다. 세금 인상 시기를 늦춘 게 경기회복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번엔 나랏빚(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됐다. 무디스가 일본 신용등급을 낮춘 건 소비세율 인상 시기 연기가 국가 재정 건전성 확충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반면 교사

시장에선 일본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적어도 현 시점에선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실패를 뜻하는 걸로 보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부의) 성장전략에 물음표가 붙었다”고 논평했으며, 요미우리신문은 “아베노믹스의 행선지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아베노믹스는 △양적 완화 △재정전략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이라는 전략이 핵심이다. 일본은행(BOJ)은 통화를 무제한 살포한다. 정부는 재정을 동원, 지출을 늘리며 경영 규제를 풀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이 3개의 화살 가운데 가장 부진했던 게 바로 성장전략이다. 성장전략엔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개혁 등의 구조개혁 정책이 필요한데 이게 미진했다는 평가다. 토머스 번 무디스 부사장은 일본의 GDP가 2분기 연속 감소한 것을 지적, 성장촉진 대책이 불확실하다며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이 제시되더라도 시행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로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19엔대를 넘어서며 7년4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한 나라 돈의 가치는 그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의해 좌우된다. 경제가 좋지 않으니 돈의 값이 떨어지는 것이다.

가뜩이나 아베 정부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발권력을 이용해 돈을 무제한 푸는 정책)가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데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기름을 껴부은 격이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산 제품과 경쟁하고 있는 우리 수출기업들엔 악재다. 일본 신용등급 강등은 경제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길인지를 보여준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