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D의 공포…중국, 금리인하 카드 꺼내들고 일본·유럽에 이어 '디플레와 전면전' 선포
일본과 유럽을 떠돌던 ‘디플레이션(deflation·지속적인 물가하락) 공포’가 중국까지 덮쳤다. 중국이 지난 21일 2년4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전격 발표한 것은 디플레이션 위험에 선제 대응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출범과 함께 ‘디플레이션과의 전면전’을 선언한 일본은 지난달 추가 양적 완화에 들어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조유로(약 1388조원) 규모의 추가 양적 완화를 내달 4일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 실질금리 인하 ‘고육책’

중국 인민은행이 1년 만기 대출 금리를 0.40%포인트 낮춘 연 5.60%, 1년 만기 예금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연 2.75%로 조정한 배경을 두고 마쥔 인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물가가 떨어져 기업들이 실질금리 상승압력에 직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가가 떨어져도 명목금리가 변하지 않아 실질금리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주장한 고물가 때 명목금리가 오르고, 저물가 때 명목금리가 내린다는 ‘피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린차이이 궈타이쥔안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물가수준이 정부가 용인하는 하한선 밑으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6%로 4년8개월 만의 최저였다.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0월(-2.2%)까지 32개월 연속 하락세다. 중국에선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물가상승률 둔화) 일 뿐이라는 시각이 많지만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순리젠 푸단대 경제학원 부원장)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부채 디플레’ 악순환 끊기

중국의 이번 금리인하는 “경기둔화와 물가하락이 과도한 부채와 연계되면 ‘부채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피셔의 시나리오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셔는 저물가가 실질금리를 높여 채무를 서둘러 갚으려는 채무자들이 늘고, 이는 예금 인출과 자산가격 급락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채무부담을 더욱 늘린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의 총부채는 2008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160%에서 지난 6월 말 251%로 급등했다. 은행 위안화예금은 10월에 1866억위안(약 33조9000억원) 줄었다. 주가는 7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물가가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여 성장에 기여한다는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의 ‘피구 효과’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일본과 유럽의 경쟁적 양적 완화

ECB는 지난 21일 자산유동화증권(ABS) 매입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9월 전월 대비 0.4%로 18개월 연속 1%를 밑돌았다. GDP는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ECB는 이에 따라 내달 4일 통화정책회의에서 1조유로 규모의 국채 매입 등 추가 양적 완화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행도 지난달 말 시중자금 공급량을 연간 10조~20조엔(94조~188조원) 더 늘리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 경제는 3분기 성장률이 -1.6%(연율)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소비세 인상 영향으로 지난 4월(3.40%) 23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에 대응하지 않으면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지만 과도한 대응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피셔 효과·피구 효과

‘피셔 효과’란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주창한 경제이론. 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물가상승률 예상치의 합계로, 물가가 오르면 명목금리가 오르고 물가가 내리면 명목금리도 내린다는 것이다. 아서 세실 피구가 주장한 ‘피구 효과’는 물가 하락이 소비자의 실질적 구매력을 키워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오광진 한국경제신문 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