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 와도 시장을 나설 땐 다 갖추고 나간다"
[Focus] 남대문시장 600년…대한민국 역사가 숨어있다
“고양이 뿔 빼고 다 있다.” “벌거벗고 와도 시장을 나설 땐 다 갖추고 나간다.”

없는 게 없다는 남대문 시장을 가리키는 얘기들이다. ‘골라~ 골라~’ 가락으로 유명한 남대문시장이 개장 600주년을 맞았다. 대지면적 2만여평, 점포 1만여개. 의류 외 1700여종에 달하는 물품을 파는 남대문시장은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최대 시장이다. 남대문시장은 ‘양키시장’ ‘도깨비시장’ ‘아바이시장’ 등 별칭도 많다. 별칭이 생기기 시작한 건 6·25전쟁 이후다. 먹고 살기 위해 남대문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팔다가 단속반이 뜨면 도망쳐 도깨비시장이었고, 미국 물건이 많이 거래돼 양키시장이었다. 아바이시장은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을 팔아 상권을 장악해 생긴 별명이다. 600년 동안 서민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자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애환을 덜 수 있는 ‘해우소’ 역할을 한 남대문시장. 6·25전쟁 등 다사다난한 역사를 지나온 600년 세월에 감회가 새롭다.

하루 40만 인파로 ‘북적북적’

남대문시장이 올해로 개장 600주년을 맞았다. 남대문 시장의 점포는 약 1만172개이고 시장 종사자는 5만여명에 달한다. 하루평균 40만명의 고객이 오가고 외국인 관광객만 1만여명이 넘는다. 하루 반입출 물동량은 2500여t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아동·남성·여성 등 각종 의류를 비롯해 섬유제품과 액세서리 주방용품 민속공예 장신구 식품 잡화 농수산물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을 판매한다. 취급 품목이 의류 외 1700여종에 달해 없는 물건 빼고 다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숙녀의류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데 국내 소매상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찾아온다. 특히 아동복은 전국 아동복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특화돼 있다.

남대문시장은 전국 소매상과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하는 도·소매기능을 겸하고 있다. 낮에는 소매시장으로, 밤에는 도매시장으로 하루종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특히 오후 10시30분부터 오전 2시에는 전국의 소매상(중간도매상)들이 성시를 이룬다. 국내의 보따리상은 물론 대만 홍콩 등 화교 및 일본 상인들과의 거래도 활발하다.

6·25전쟁, 대형 화재 등 다사다난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상업활동이 처음 이뤄진 것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시전행랑(市廛行廊)’을 설치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의 정문인 숭례문은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과 물자로 시장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입지였다. 그 덕에 조선 초기 1414년(태종 14년)에 조정이 감독하는 시전 형태로 좌판이 늘어서면서 시장이 운영됐다. 1608년(선조 41) 들어서 대동미(大同米)·포(布)·전(錢)의 출납을 맡아보는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 특산물 등도 매매됐다.

1897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상거래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과일가게 3곳, 쌀가게 14곳, 어물전 36곳, 담배가게 22곳 등 85개 점포가 있었다. 남대문시장은 6·25전쟁으로 시장 전체가 폐허가 되는가 하면 1954년에는 큰불이 나 시장 전체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당시 점포 1000여곳이 소실되면서 동대문시장에 최대 시장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1963년 지금의 남대문시장 주식회사가 설립되고 1968년 새로운 시장 건물이 완성되면서 최대 시장 자리를 되찾았다.

접근 불편·시설 노후화는 과제

국내 최대 규모 시장이지만 2000년 이후 남대문시장이 활력을 잃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아동복 시장을 제외하곤 시장의 강점으로 내세울 품목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농·수·축산물을 중부시장과 여의도 수산시장에, 꽃 시장을 고속터미널과 양재화훼공판장에 넘겨주면서 종합도매시장의 위상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국권 침탈과 6·25전쟁 중에도 최고·최대 시장 자리를 지켰던 남대문시장이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의견이 많다. 동대문시장에 쇼핑타워가 들어서면서 의류시장이 밀린 데 이어, 시설 노후화와 주변 공용 주차창이 없어 주차난으로 인한 불편함도 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서울관광 질적 내실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남대문시장은 2007년에 외국 관광객 방문율이 56.9%로 명동에 이어 2위였지만 2013년 조사에서는 38.6%로 5위에 그쳤다. 쓰레기 등으로 인한 더러움, 혼잡, 불친절 등이 개선할 점으로 지적됐다. 접근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동대문시장은 지하철 1, 2, 4, 5 호선이 지나고 버스 노선도 많지만 남대문시장은 4호선만 지나고 지상과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레베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