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스마트폰, 공장을 빨아들이다
200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 최대의 소비자 가전 전시회인 CES 기조연설을 맡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난데없이 한국 중소기업 제품인 ‘아이리버 H10’ MP3플레이어를 들고 나와 제품 기능을 시연하며 격찬했다. 한때 그렇게 주목받던 아이리버(옛 레인콤)는 지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07년 600억원을 주고 아이리버를 샀던 보고펀드는 지난달 295억원에 회사를 SK텔레콤에 팔았다. MP3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폰이 넘쳐나면서 시장이 붕괴된 탓이다.

스마트폰은 21세기 혁신의 상징

스마트폰은 세계인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21세기 혁신의 상징이다. 언제 어디서나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면서 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취득하는 원천이고, 때로는 게임기와 MP3, 영화관, TV로 변신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제조업 공장이 스마트폰 때문에 생사기로에 서 있다. PC와 게임기, 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계산기, 녹음기, MP3, 알람용 시계, 만보기, 다이어리 공장들은 하나둘 스마트폰의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한 예로 일반 디지털카메라는 지난해 시장 규모가 40%나 줄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가 일반 디카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스마트폰이 만든 블랙홀은 갈수록 커질 조짐이다. 결제모듈을 내장한 스마트폰은 신용·교통카드를 흡수하고 있고, TV와 영화산업도 위협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스마트폰과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 및 소프트웨어뿐이다. 스마트폰이 지금 일자리와 함께 전통적인 산업 지형까지 뒤흔들고 있다.

기로에 선 제조기업들

스마트폰 때문에 휘청거리는 대표적인 국내 기업이 팅크웨어(아이나비 내비게이션), 아이리버(MP3), 삼보컴퓨터와 주연컴퓨터(PC) 등이다. 비단 국내만이 아니다. 일본 닌텐도와 미국 블랙베리, HP, 델 등도 마찬가지다.

또 이들 기업과 공장의 위기는 각종 전자제품 제조에 필수적인 중간재 ‘칩마운터(chip mounter)’ 시장 축소를 불러오고 있다. 전자회로기판에 칩을 얹는 기계인 칩마운터 시장은 2001년 21억달러에서 2008년 4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가 지난해 다시 26억달러 규모로 감소했다. 2000년대 중후반 MP3와 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생산이 늘면서

요가 급증했으나, 2010년 무렵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스마트 기기 등 고가 제품을 만드는 고속 칩마운터 시장은 커졌지만, 저가 및 범용 제품을 만드는 중속 칩마운터 시장 규모는 반토막난 상태다.

세계는 ‘앱 경제’로 재편 중

“대부분 애플 제품이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다.” “애플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일자리는 결코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2012년 열린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사이에 오간 대화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이 대화는 이후 애플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일자리 창출 논란으로 번졌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애플은 “미국 내에서 직·간접적으로 51만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는 내용의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엔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개발자 21만명이 포함됐다. 미국 경제에서 앱 생태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미국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앱 시장 규모는 250억달러(약 26조4300억원) 정도다.

앱 기술,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이에 따라 앱 개발과 관련한 창업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초래한 산업 생태계 변화에 맞춰 실업 및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만 개인 앱 개발자나 스타트업 사이에 나타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풀어야 할 숙제다. IT 전문매체 기가옴 조사에 따르면 앱 개발자의 34%는 연간 수입이 1만5000달러(약 16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는 3만5000달러(약 3700만원) 이하였다. 평균 연간 수입은 4만5000달러(약 4800만원). 이는 앱 이용자들의 이용 행태와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다. 다양한 앱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앱은 10개 내외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서도 약 63%는 1년 주기로 바뀐다.

김현석/전설리 한국경제신문 기자 realist@hankyung.com